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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호훈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1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259 - 28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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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정인홍의 현실인식과 정치론의 성격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정인홍은 사류를 국가의 원기로 인정한 가운데 一黨專制의 정치를 구상했으며, 국가가 갖추고 있는 형벌, 무력을 적극 활용하는 ‘伐邑’의 정치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인홍은 ‘民’의 안정을 통하여 ‘國’의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겼다. ‘보민’ ‘위민’의 논리 위에서의 국가 공고화론이었는데, 이 생각은 정치권 일각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거치며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국’의 영역을 강화하자는 움직임과는 대립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전쟁기에 시행되었던 召募陣, 束伍軍등의 새로운 군대를 혁파하고 감사의 留營制를 폐지하자는 주장, 수령 적임자를 뽑아 그들의 지방민에 대한 침탈을 방지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된 사회경제적 대책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민의 休息그리고 이를 통한 民力과 國力의 회복을 기대하는 의식과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방에 살았던 ‘민’의 처지 위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런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민의 휴식을 강조하는 노장사상과도 연결되는 태도이기도 했다. 정인홍의 생각은 ‘國’ 영역을 강조하며 집권 체제를 강화해 가던 당시의 大勢와는 상충하는 점이 있었다. 서인계 인물로서 성혼과 이이의 학문에 영향 받았던 이귀가 1601년(선조 34)에 정인홍의 죄를 성토했던 것은 ‘민’의 영역을 극히 중시하고 강조했던 정인홍에 대해 그 반대편에서 ‘국’의 확장과 강화를 강조했던 인물이 보내는 공격의 일단이었다.
요컨대, 정인홍의 정치적 사유는 공권에 압도당하지 않는 재지 사족의 지위와 역할을 중시하고 그 위에서 전란 전후의 위기 국면을 돌파하려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지방적 분권적 질서 위에서 조선의 현실을 진단하고 정치 운영의 방향을 설정하려는 모습이기도 했다. 정인홍 스스로 ‘위민론’ ‘보민론’을 표방했지만 그 언설이 내포했던 것은 지역 士大夫의 영향력이 크게 작동하는 사회를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伐邑’의 정치운영론과 ‘保民’의 정치의식
Ⅲ. 집권체제의 강화 반대와 전쟁기 新行 制度의 폐지 주장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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