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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아네스 (순천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2집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 - 45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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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시대 개경 일대 명산대천으로 祀典에 등재한 국가 제장 위치와 그 의미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개경의 산천 제장으로는 松嶽, 龍岫山, 進奉山, 西江 등이 있었다. 개경 주변의 산천으로는 개성현의 大井, 永安城이 사전에 실리었으며, 우봉군의 九龍山, 朴淵, 因達巖과 정주의 白馬山, 덕수현의 德積山, 송림현의 五冠山, 임진현의 臨津, 적성현의 紺嶽 등이 국가 제장이었다.
명산대천의 제사는 고려 초부터 이루어졌다. 태조는 고을의 산천제를 국가제사로 편성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지역의 세력가를 지배체제 안으로 편제하고자 하였다. 성종 때에는 국가제사 체계를 개편하면서 산천제를 정비하였다. 개경을 중심으로 하여 산천제를 정비하고 제장을 구성하였다. 송악과 서강 등 개경 주변의 국가그이 산천 제장이 밀집하였다. 나라에서는 개경 인근 명산대천에 사시로 태뢰를 바쳐서 제사하였다. 이는 대사 또는 중사의 예에 준하는 것으로 개경 일대의 산천제를 다른 지역의 것에 비하여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려준다. 고려에서는 명산대천을 악진해독과 산천 등으로 나누어 변사하지 않았다. 명산대천 사이의 위차는 봉작의 수여를 통하여 나타났다. 개경의 송악을 수위로 한 명산대천의 위계에 따른 봉작 체계를 갖추었다.
개경 일대 산천 제장에는 요충이나 왕실의 성소가 많았다. 송악, 용수산, 진봉산, 구룡산, 오관산, 감악 등은 도읍과 나라를 지키는 요충이었고, 서강과 임진은 수운 교통의 중심이었다. 또한 개경의 산천 제장에는 왕실의 발상지이며 선대의 역사가 깃든 성묘가 많았다. 송악, 서강, 구룡산, 오관산, 개성, 대정, 영안성 등이 대표적이었다. 국왕과 왕실은 이러한 산천을 국가 제정으로 삼았다. 이 점에서 개경의 주요 제장은 왕실 성소로서의 의미를 가졌다. 나라에서는 여기에 산천제를 올림으로써 성소를 기념하였고 왕실을 신성화하고자 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명산대천과 제장의 위치
Ⅲ. 산천제의 정비와 제장의 의미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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