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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수 (동서대학교) 김희호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3집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193 - 237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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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후기 奴婢, 雇工과 함께 주요 노동력으로 나타나는 挾戶의 존재형태와 성격을 기존 연구 성과와 각종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여러 문헌 자료를 검토해 볼 때 조선시대 挾戶는 客戶와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협호의 전신은 중국의 객호와 마찬가지로 流民으로 타향에서 흘러온 僑寓戶였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와서 협호는 지역적으로 도시뿐 아니라 농촌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는데, 이를 도시협호와 농촌협호로 나누어 보았다. 이들 도시와 농촌 협호는 주호와의 관계에서 볼 때 비혈연관계 협호과 혈연관계 협호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조선후기 협호는 농촌협호이면서 비혈연관계 협호인 경우가 다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농촌협호의 다수는 주호의 예속노동력이나 종속소작인을 형성하지만 도시협호의 경우는 농업 외에 상공업, 雇役등에 종사하는 임노동자가 많거나 혹은 관리, 과거 준비 등 특수목적을 위해 上京하여 단지 주호의 가옥 일부를 임차하고 있는 자들도 존재하였다. 따라서 조선후기 협호의 성격을 어떤 한 가지 측면에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노비나 고공의 경우는 국가의 법률적 체계에 의해 명확히 신분이 규정된 반면 협호는 그와 달라서 사회경제적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서 전체 戶數가운데 협호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후기에 비해 한말 · 일제강점기로 갈수록 협호의 숫자는 점차 감소 추세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국가의 主戶농민에 대한 확대재생산 정책으로 인한 것 뿐 아니라 협호의 노동효율성이 낮은 것에 기인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挾戶ㆍ客戶의 연구동향
Ⅲ. 협호의 유래와 종류
Ⅳ. 협호의 처지와 존재 비중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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