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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상도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 통일인문학논총 제53집
발행연도
2012.5
수록면
331 - 36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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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일제침략기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과정에서 시도되었던 협동전선운동을 통해, 현재의 남북대립과 사회갈등을 치유·극복하기 위한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먼저 분열의 원인을 독립운동 진영 내부의 사정에서 찾아본다면, 자기중심의 통합 주장, 통합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의 부재, 독립운동 이념이나 방략의 차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일제의 책동을 지적하는 중국 측 자료도 있다. ‘자기중심’의 측면과 관련해서는, 단결정신의 부족, 교만하게 비칠 정도의 강한 개성, 상대할 양보와 타협을 결여하였음이 지적되고 있다. 겉으로 단결과 통합의 구호는 요란하였지만, 통일과 화합을 위한 헌신과 양보, 절충과 타협이 무시된 채, 제각기 자신의 생각과 이익을 중심으로 한 통일과 통합을 주장함으로써, 불신과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무대가 중국대륙이었기에, 중국 抗日戰爭의 추이, 國共合作의 성립과 결렬 등, 중국정세의 변화로부터 적지않이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중국정부의 지원과 간여라는 요소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중국정부가 임정 승인 문제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세 운 가장 큰 이유가 한인세력의 ‘분열’이었다. 그리고는 이를 매개로, 임정과 한인세력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묶어 두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통합의 구심점은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모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정세 변화와 중국정부의 전후 한반도정책 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였지만, 27년이라는 세월을 한민족의 대표기관으로서, 독립운동의 지도기관으로서 역할해온 사실이 이 같은 합의를 밑받침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통합의 방법’과 관련해서는, 우파진영은 ‘통일된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좌파진영은 각 당파가 자신의 사상을 견지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다. 또 우파진영은 ‘常務委員制’를 주장한 반면에, 좌파진영은 ‘領袖制’를 고집했다. ‘통합의 형태’로는 크게 ‘單一黨’과 ‘聯盟體’가 제시되었다. 7당통일회의에서도 한국국민당과 민족혁명당은 ‘자파가 당권을 장악하는’ 전제 위에서 단일당 체제를 선호하였고, ‘재건’한국독립 당·조선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 등 군소세력은 聯盟體 방식을 고집하였다. 이 역시 기득권 유지 여부와 상관이 있는 문제였다. 이 같은 사실은 협동전선운동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합종연횡’의 방식을 통해 자구책을 강구해 간 정치활동의 한 과정이었음을 알려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독립운동 상의 분열과 통합의 정치학
3. 분열의 원인
4. 통합 실패의 교훈
5. 통합 방안의 모색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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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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