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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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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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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4집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203 - 23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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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서구의 정통적 해석은 1939년 소련이 공식적으로는 영국, 프랑스와 삼국협상을 했지만 비밀리에 독일과 데탕트를 추진했다고 파악하면서 소련의 집단안전보장 정책은 위장된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이는 소련이 삼국협상안을 제시한 4월 17일에 있었던 메레칼로프·바이츠제커 접촉, 5월 5일 슈누레·아스타호프 접촉, 5월 17일 아스타호프·슈누레 접촉에서 제시된 소련의 적극적인 데탕트 ‘제안’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 종식 후 발간된 소련 측 사료는 이러한 세 차례 접촉의 내용에 대해 독일 외무성 사료와는 반대로 기록하고 있다. 양측 사료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소련과의 접촉에 나선 독일 외교관들의 데탕트 의지가 독일 측 사료에 반영된 측면도 있지만 소련 정부의 삼국협상 노선과는 달리 독일과의 데탕트를 추구한 메레칼로프와 아스타호프의 독자적 행동이 ‘혼선’의 요인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뿌리는 메레칼로프와 아스타호프가 독일 외교관에게 말한 것과 본국에 보고한 내용이 달랐다는 점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소련의 데탕트 의지를 확인했다고 생각한 독일이 소련과의 정치적 데탕트를 적극적으로 시도했으나 소련의 반응이 없자 당혹감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소련은 8월 11일 몰로토프의 지시를 통해 독일과의 협상 의사를 최초로 표명했다. 소련은 영국, 프랑스와의 군사회담의 실패가 명백해진 8월 14일 이후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독일과 협상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한 독일과 소련의 실질적 협상은 8월 15일부터 시작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탐색전: 관계 개선을 위한 독일의 시도
Ⅲ. 7월 말 독일의 ‘결정적’ 제안과 소련의 협상 수용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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