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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권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1·272號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73 - 20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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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照’는 功臣像같은 제의적 기능의 초상화와는 달리, 감상적 기능이 강한 초창화를구 분하는 용어이다. 소조 역시 초상의 일종이므로 주인공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고자 초상회법이 기본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소조가 갖는 기능으로 인해 일반적인 인물화의 구성과 화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에서 소조는 18세기 전반에 주로 북인을 포함한 남인과소 론 내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상적으로 유연하였으며 정치적 결속이라는 현실적 요구가 덜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즉 기존과는 다른 형식의 사대부상이 제작되게끔 하였고 나아가 훨씬 자유로운 형식을 띠는 소조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흐름에 더하여 18세기 후반에는 북학파가 연행을 하여 청 소조를 조선에 소개함으로 인해 다양한 소조의 제작이 촉진되었다. 북학파는 청의 초상화풍을 주도했던 波臣畵派를 비롯하여 揚州畵派 화풍을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한 부류이다. 그렇지만 이덕무가 祝德麟의 소조를 잘못 이해하였듯이 그들이 처음부터 소조의 의미와 용도를 숙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학파는 시간이 흐를수록 소조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 점은 박제가 및 유득공과 陳森간의 교유에서 확인된다. 청 소조화풍이 조선 소조에 적용되는 과정 역시 그러한 이해의 정도에 비례하는데, 韓宗裕의 〈豹菴姜公六十九歲小像〉부터 김홍도가 그렸다는 〈사인초상〉까지의 화풍 상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사실 소조는 一毫不似이라는 강고한 조선의 초상화관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제작이 원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소조는 다른 초상화에서 찾기 힘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마치 종교적 성상과 같은 공신상과는 달리, 소조는 寓意의 표현을 비롯해 주인공의 자의식 같은 내면세계, 사적인 사건의 기념,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 바람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하기에 효과적인 초상화였던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小照’의 의미아 발생
Ⅲ. 북학파의 연행과 淸소조 화풍의 유입
Ⅳ. 소조의 변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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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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