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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44輯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169 - 19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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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팽창 과정에서 동옥저와 濊 세력을 장악하였다. 고구려는 동해안에 소재한 이들 세력을 장악함에 따라 소금과 해산물 및 곡물을 공납받을 수 있었다. 이와 맞물려 東海岸路의 이용이 본격화 되었다. 그와 더불어 고구려는 高城港을 이용한 동해 해상 지배권 확립에 나섰다. 고구려가 이렇듯 동해안로와 동해에 대한 해상 지배권을 장악함에 따라 그 영향력은 자연히 신라에 쏠리게 되었다.
강원도 삼척에 소재한 실직곡국과 경주 서북에 소재한 음집벌국간의 "所爭之地"는 동해안로를 따라 남하하는 실직곡국과 동일한 교통로를 이용하여 북상하는 음집벌국간의 세력이 만나는 접점에서 야기된 지배권 충돌이었다.
동해안과 동해로 진출한 고구려는 이를 기반으로 일본열도와 교류할 수 있었다. 그러한 선상에서 고구려는 우산국이 소재한 울릉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울릉도 고분인 基壇式 積石石室墳에서 고구려 적석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유력한 증좌인 것이다. 신라가 우산국을 지배한 동기는 동해의 해상권 장악과 왜구 통제라는 요인이 작용한 것이었다.
우산국 정벌에 나선 이사부의 출항지에 대해서는 최근 확인된 강릉 강문동 토성의 존재로 인해 강릉설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東海岸路의 開明과 동옥저
Ⅲ. 신라 지역으로의 진출과 東海岸路
Ⅳ. 東海 해상 지배권 장악과 于山國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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