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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道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34輯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 - 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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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集安 일대 고구려 왕릉의 소재지 비정과 관련한 關鍵은 일차적으로 河川 이름이었다. 『삼국사기』 고구려왕들의 시호에 보이는 集安 일원의 하천으로는 國川과 東川ㆍ中天ㆍ西川을 비롯해서 美川이 존재하였다 종전에는 국내성을 기준하여 동천과 서천 그리고 중천의 존재를 비정하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國川을 압록강으로 지목하고는 하였지만, 國川=압록강설에 의한 기왕의 하천 이름에 근거한 고구려 왕릉 비정은 타당성을 잃었다.
본고에서는 國川은 국내성 西壁 앞을 통과하면서 일종의 垓子 역할을 하는 통구하로 지목할 수 있었다. 그리고 東川ㆍ中天ㆍ西川과 같은 방위명 한천은 國都인 국내성 반경을 통과하는 압록강의 일정구간을 가치키는 하천 이름으로 상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임강총이 동천왕릉일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 것이다. 동시에 압록강 沿邊에 소재했던 왕릉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정은 全面 再考하게 되었다.
遷都나 盜掘로 인한 移葬說이 제기되었던 분묘에 대해서도 검증을 해 보았다. 전동면왕릉의 경우는 고구려 시조왕릉으로서 移葬 事出가 당초부터 발생하지 않았음을 구명하였다. 서천왕릉은 압록강에 비교적 근접한 서대총으로, 미천왕릉은 M2100號 무덤으로 추정하였다. 葬地名에서 따온 고구려왕들의 시호는 평양성 천도 이후는 물론이고 고구려가 멸망할 무렵까지 이어졌음을 밝혔다.

목차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장지명식 시호
Ⅲ. 기존 왕릉 비정의 검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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