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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朴仙姬 (상명대학교)
저널정보
비교민속학회 비교민속학 比較民俗學 第49輯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45 - 99 (5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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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서기전 4,500~서기전 3,000)에 속하는 내몽고자치구 哲理木盟 奈曼旗 境內에서 두 개의 옥인장이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이 옥인장에는 몸체에 모두 구멍이 뚫려있어 끈을 꿰어 의복에 차거나 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기할 것은 인면에 홍색의 안료가 남아있는 점이다. 중국학자들은 이 옥인장을 ‘중화민족제일인(中華民族第一印)’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이 옥인장들이 실제로 나만기 境內에서 출토된 것이라면, 홍산문화유적에서 보이는 유적과 다양한 복식유물들은 중국이나 북방지역의 것과 달리 고조선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중국학자들이 이 옥인장을 ‘중화민족제일인’으로 분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홍산문화는 주로 복식품으로 사용되었을 옥기뿐만이 아니라 적석총, 제단, 성곽과 취락유적들이 함께 두드러진 문화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용되었을 악기와 도구 등의 유물에서 보여지는 문화적인 의미와 상징적 가치 역시 뛰어나다. 특히 홍산문화 후기의 우하량유적은 제단과 여신묘, 적석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규모의 유적으로 상당히 수준 높은 사회발전의 단계를 이루고 있다. 홍산문화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문화현상들은 중국문화와 확연히 구별되고, 고조선문화와 이후의 여러나라시대 문화 특징에 지속적인 발달 양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홍산문화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옥인장을 ‘중화민족제일인’으로 해석하는 중국학자들의 견해는 중화주의에 따른 헛된 집착일 뿐이다.
중국학자들은 아주 단순히 오늘날 만주가 그들의 영토이기 때문에 그곳에 대한 고대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의도적인 경향이 많다. 홍산 옥인장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중국학자와 일본학자들은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옥기를 가장 이른 시기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고 있지만, 옥기의 사용은 중국보다 한반도와 만주지역이 훨씬 이르다.
인장의 출현은 사회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게 마련이다. 옥인장이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나만기의 유적들에서는 성벽이 발견되었다. 성곽유적은 정치적 지도자가 무리를 통치하며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의 자취를 보여주는 정치적 구조물이다. 인장은 정치지도자가 직권을 행사하는 상징물이며 공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만기의 여러 유적들에서는 한민족 문화의 특징인 새김무늬질그릇이 출토되었다.
중국에서는 곡옥을 비롯한 옥기들이 위의 동북지역보다 약 1,000년 정도 늦게 만들어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인장의 경우는 현재까지의 출토물로 보아 중국 최초로 일컬어지는 상시대의 동인장(銅印章)을 기준으로 하면, 홍산 옥인장 보다 만들어진 시기가 적어도 약 2,000년 정도 늦다. 이와 같은 내용에 근거하면 오히려 인장을 비롯한 옥기 등의 문화가 한반도나 만주지역에서 기원하여 중국에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래와 같이 동아시아의 모든 문화가 황하유역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는 선입관이 수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인장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사화의 내용에 보이는, 천부인(天符印)을 주목한다. 단군사화와 고고학 자료는 한국의 상고시대를 해석하는데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 나만기 境內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옥인장이 만들어졌을 시기는 이 유적이 홍산문화시기에 속하므로 서기전 4,500~서기전 3,000무렵의 고조선 건국 이전 단계로 환웅의 ‘신시’시대에 속한다.
복식문화와 채색기법, 부호문화, 종교유적과 유물, 옥의 재질, 옥기의 양식 등의 대한 분석으로부터 홍산문화의 모든 내용과 성격들이 고조선문화의 원형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아울러 홍산옥인장의 주체는 고조선 이전 환웅천왕 ‘신시’문화의 산물인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홍산 옥인장을 중심으로 분석된 홍산문화의 성격은 중국이나 북방지역의 것과 크게 구별되고, 고조선과 여러나라시대 문화에 그 특징적 요소들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어 그 실체와 정체를 한민족 문화의 원형으로 귀속시켜야만 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홍산문화를 포함한 만주의 고대문화를 총칭하여 하나의 강 이름으로 포괄하여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이를 중국의 황제문화로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하문명’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중국학계의 단순한 설명을 용납하고 동북공정을 따르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우리는 이 문화를 반드시 ‘고조선문명’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홍산 옥인장의 주체도 ‘중화민족제일인’이 아니라 환웅천왕 ‘신시’문화의 상징물로 올바르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홍산문화의 성격과 옥인장 출현
Ⅱ. 홍산문화 출토 옥인장의 주체 검토
Ⅲ. 홍산문화가 지속된 고조선문화
Ⅳ. 옥인장은 환웅의 ‘신시’문화 유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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