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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백영 (광운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8호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7 - 48 (42page)
DOI
10.22345/kjuh.2012.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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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조선시대부터 사통팔달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풍부한 농업기반시설을 갖춘 경기도의 수부였다. 특히 정조대에는 화성이 축성되고 유수부(留守府)가 설치되면서 행정·상업도시로서 급격히 성장했으나, 정조 사후 화성이 방치됨에 따라 수원은 쇠퇴일로에 놓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근대 수원의 도시화는 이러한 전통시대의 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설치된 권업모범장을 중심으로 한 농업도시화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일제하 수원의 식민지근대 도시화 과정을 철도교통의 요지이자, 농업생산의 모범지역이며, 유서 깊은 구도시ㆍ역사도시라는 세 가지 주요한 특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해보고자 했다.
수원의 근대화는 개항 이후 1914년까지 진행된 행정구역 개편과 경부선 철도 개통에서 비롯된다. 경부선 개통 이후 권업모범장과 농림학교 등 주요 시설이 수원역 앞에 건립되면서 수원의 도심이 점차 성문밖으로까지 확대된다. 수원역~남문앞에 이르는 신시가지의 형성과 발전을 주도한 것은 일본인으로, 수원 거주 일본인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농장을 경영했으나 부업으로 상업에 종사하면서 상권을 확대해나갔다. 또한 화성 내부에 수원군청, 자혜의원, 경찰서 등의 근대적 관공서 건물이 들어서고 팔달산에 수원신사가 건립되면서 식민지 근대 도시의 경관이 형성되었다.
농업도시 수원에 공업도시로의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193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30년대 수원의 직물업 성장은 권업모범장의 잠업 연구와 기술 배양 및 인력 양성, 철도 부설로 인한 운송수단의 구비 등의 여러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였는데, 그 결과 1930년대 후반 수원에서는 금융·토지자본이 공장자본으로 전환하여 대규모 직물공장들이 설립되어 수원이 일약 공업도시의 면모를 띠게 된다. 특히 1931년 수여선이, 1937년 수인선이 각각 개통되면서 수원지역의 철도가 경기남부지역 교통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수원역은 한국 간선철도의 핵인 경부철도와 경기남부지방의 동서간 여객 및 물자 운송을 책임진 수여선과 수인선의 중심역으로 기능하였다. 수원에 시가지계획이 마련된 것은 1944년으로, 식민지 조선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상당히 지체되었으나, 해방 이후 도시개발과정에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유산으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일제하 수원의 근대 도시화 과정에 농업과 철도가 핵심변수로 작용했으며, 그 파생 효과로 공업화와 관광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전통 읍치에서 근대 도시로
Ⅲ. 식민지도시 수원의 탄생, 1895~1914
Ⅳ. 식민지 농업모범도시 수원의 발전, 1914~1930
Ⅴ. 수원의 공업도시화와 전시체제하의 도시계획, 1931~1945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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