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태문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47호
발행연도
2013.5
수록면
63 - 91 (29page)
DOI
10.15299/jk.2013.05.47.6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오늘날 일본에서도 가장 활발히 통신사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는 히로시마(廣島)가 사행록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 지를 살핀 것이다.
먼저, 통신사행에 있어서 히로시마의 역할을 살폈다. 히로시마는 통신사가 반드시 들렀던 瀨戶內海의 대표적인 港町인 鎌刈와 韜浦가 포함된 水路노정 경유지였다. 1636년 통신사 이후 江戶로 향할 때 客官 숙박이 정착되고, 귀로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문형태를 띠었다. 또 히로시마는 통신사에 대한 접대와 支供에 정성을 다한 지역으로, 鎌刈는 통신사가 낭비가 심하다고 여길 정도로 접대에 최선을 다했고, 韜浦도 上關보다 나은 접대로 통신사를 감동시켰다.
다음으로 사행록에 들어앉은 히로시마의 모습을 살폈다. 첫째, 히로시마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특히 福禪寺는 빼어난 경치로 詩興을 불러 일으켜 통신사로부터 仙境으로 칭찬받았다. 둘째, 히로시마는 운행하는 배로부터 생필품을 공양 받아 생활하는 독특한 생활방식을 지닌 盤臺寺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맛 좋은 술과 좋은 돗자리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묘사되었다. 셋째, 히로시마는 통신사와 지역민과의 문화교류가 활성화된 곳으로, 그 양상은 문학, 예능, 기술문화, 서적ㆍ풍속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진 곳으로 묘사된다. 넷째, 히로시마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 왔던 조선 被虜人들의 삶의 양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통신사행에 있어서 히로시마의 역할
3. 사행록에 들어앉은 히로시마의 모습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900-002569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