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상근 (한국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연구 敎會史硏究 第41輯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115 - 142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주로 1850년대 조선에 설립된 신학교의 설립 과정과 성격을 다룬 연구이다. 특히 2005년부터 제기된 정식 신학교의 출현 시점과 관련하여;기존의 주장과 자료들을 재검토했고;이를 통해 1850년대 설립된 신학교들의 성격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1850년에 정식 신학교가 등장했다는 연구에 대해;1855년 메스트르 신부가 세운 배론 신학교가 정식 신학교였다는 2005년 이전의 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1850년 이전 조선 대목구에서의 신학생 양성은 한 곳에 정착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사목 순방 중에 하거나;여름 휴식처에서 몇 달간 교육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이동형 혹은 임시 형태’ 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정식 신학교는 ‘신학생 교육을 목적으로 교구장의 지시와 정주 형태의 신학교 운영’이 요구됨으로;1850년 이전의 앵베르 주교와 페레올 주교 때에는 아직 정식 신학교가 조선에 설립되지 않았다. 이것은 앵베르 주교와 페레올 주교도 자신들의 서한에서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다가 1850년에 다블뤼 신부가 병이 나서 신학생들만 가르치게 되었는데;이를 계기로 정주 형태의 신학교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학교는 다블뤼 신부의 병이 계기가 되었고;다블뤼 신부의 병이 나으면 다시 이전과 같은 이동형 혹은 임시 형태로 바뀔 가능성이 컸다. 그러므로 이 신학교는 정주형이지만 ‘임시성’이 강하여 ‘임시 정주형 신학교’라고 할 수 있고;1851년 5월 이전에 설립된 배티 신학교가 이러한 성격의 학교라고 하겠다.
신학생들이 유학을 떠난 1854년 3월 이후;배티 신학교의 교육은 중지되었다. 그리고 1855년에 메스트르 신부가 배론에 와서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처음부터 신학생 교육을 위해 일정한 장소를 선정한 것으로;정식 신학교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대목구의 신학생 교육은;‘이동 ? 임시 형태의 교육’에서 ‘임시 정주형 신학교’ 그리고 ‘정식 정주형 신학교’로 발전되어 갔으며;‘정식 정주형 신학교’는 1855년에 설립된 배론 신학교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다블뤼 신학교의 성격
3. 배론 신학교의 성격
4. 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2)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