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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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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선일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4號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83 - 10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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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강원도 속초시 보광사 대방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제작한 초안비구에 관한 연구이다. 이 보살상은 2010년 9월에 사찰의 의뢰를 받아 樹種과 年輪年代 등을 조사하던 중에 복장물을 비롯하여 발원문이 조사되어 조선후기 보살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발원문에 의하면 〈목조지장보살좌상〉은 1654년 금강사 안양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登徵가 證明을 맡고, 초안이 제작하였다. 그런데 이 불상의 대시주로 나오는 한씨는 남편인 숭록대부 나업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에 시주를 하는데 증명으로 참여한 등휘도 부모께서 모두 해탈을 하여 극락구품 연화대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불상의 조성에 시주자로 참여한 후원자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불상을 제작한 초안은 기존에 1659년 수화승 三忍과 전남 고흥 금탑사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제작한 조각승이다. 따라서 초한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불상이 이번에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또한 1740년에 초흠과 풍택이 지장보살좌상을 중수하는데, 초흠은 1739년 서울 학도암 괘불도를 조성한 불화승으로 18세기 불상의 중수와 개금을 불화승이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높이 46㎝의 중소형 불상으로, 민머리의 聲聞比丘形이다. 지장보살은 상체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佛身과 따로 제작된 양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손의 형태는 조선후기 제작된 釋迦佛을 제외한 대부분의 존상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手印이다.
보살은 각이 진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원통형의 코, 미소를 머금은 입을 가지고 있다. 착의법은 두꺼운 대의 안쪽에 扁衫을 입고, 대의자락의 한 가닥을 들어 올린 손목 뒤에 비스듬히 걸치고,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왼쪽 어깨의 대의자락은 수직으로 내려와 반대쪽 대의자락과 겹쳐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이 완만하게 흘러 내려 표현된 것은 17세기 중반부터 나타나는 대의처리이다. 대의 안쪽에 가슴을 가린 僧脚崎는 수평으로 묶어 상단에 연판형의 주름이 접혀있다. 불상의 뒷면은 목 주위에 대의를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이와 같은 얼굴의 인상과 착의법을 한 조선후기 불상으로는 전남 장성 백양사 목조지장보살좌상으로, 1640-50년 사이에 초안이나 그 계보 조각승에 의하여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인균(-1615-1655-)→삼인(-1628-1659-)→초안(-1654-1659-)으로 이어지는 조각승 계보는 17세기 중반의 불교조각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찰의 중창과 중건이 진행되면서 지장전의 건립과 비례하여 지장보살이 제작되는 상황을 중심으로 여러 조각승들이 만든 지장보살의 양식적인 검토를 통하여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보았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속초 보광사 木造地藏菩薩坐像과 發願文 및 腹藏物
Ⅲ. 조각승 草安의 활동과 그 系譜 및 佛像 樣式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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