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성인인 공자의 여성관은 무엇일까? 또 그런 여성관이 오늘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이에 각종 문헌 등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평등교육사상과 남녀유별이다. 공자의 평등교육사상인‘유교무류(有敎無類)’는 여성관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는 남녀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상이다. 당시 전쟁이 일상화된 춘추전국시대임에도 공자는 자신의 나라인 노나라는 물론이고 언제든지 적국(敵國)으로 바뀔 수 있는 주변국의 제자들까지 다 수용하였고, 신분의 차이도 전혀 묻지 않았다. 둘째, 외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했다.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여색(女色)을 좋아하듯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한 자는 인(仁)한 사람이 드물다.”는 공자의 말에서 공자도 미인을 좋아했으며, 그중에서도 마음이 어질고 착한 미인을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공자의 여성관으로 볼 수 있는“여자와 소인은 대하기가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 한다.”는 표현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이는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일부 여성에게 한정된 공자의 자조 섞인 표현으로 보인다. 넷째, 삼종지례(三從之禮)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악습의 상징인 삼종례와 칠출(七出)이 공자시대에 이미 정착한 배 경은 무엇일까? 이는“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예로써 하고, 돌아가시면 장례를 예로써 하며, 제사지내기를 예로써 해야 한다.”“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동(動)하지 말라”는 논어의 내용과 훗날 맹자의“자식이 없어서 선조의 제사를 끊음이 최고의 불효”라는 명쾌한 정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삼종지례와 칠거지악은 공자의 여성관이라기보다 당시 예에 충실하려는 사회의 풍습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공자의 올바른 이해에 더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