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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영걸 (북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9호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97 - 143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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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지금까지 빈약했던 서광계의 조선선교계획에 대해 그 전말을 자세히 밝힌 것이다. 우선 선행연구들에 대해 조사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문헌연구의 방법으로 관련된 사료들을 한층 더 세밀하고 깊이 있게 발굴하였는데, 서광계의 조선선교계획은 그 시작부터 무산되기까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서광계의 조선선교계획은 예수회 롱고바르도 선교사에 의해 제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롱고바르도는 북경으로 떠나는 삼비아시에게 기회가 닿으면 조선으로 건너가도록 했고, 서광계를 만난 삼비아시는 조선선교에 관한 뜻을 전했다. 이에 서광계는 1619년 3월 사르후전투에서 명나라와 조선 연합군이 만주족에게 패한 상황을 이용하여 조선선교계획을 실행할 기발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즉, 실질적인 조선선교계획을 외부적으로는 조선감호라는 정치적인 제안 속에 감추어 은밀히 진행하는 것이었다. 서광계는 만력황제에게 조선감호 전략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조선에 파견받기를 자청하였다. 이 기회에 삼비아시를 데리고 가기로 조선선교에 필요한 전도서적들까지도 준비하였다.
그러나 서광계의 조선감호 제안은 사르후전투 패배이후 그 책임론으로 더욱 치열해진 명나라 조정의 계파 암투로 황제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 1619년 7월, 조정에서는 서광계와 같은 유능한 인물이 현 시국에서 해외로 파견되기 보다 국내에서 군사를 훈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뜻을 받아들인 만력황제는 8월 2일 수도에 남아 신병을 훈련시키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이로써 서광계의 조선감호 제안이 최종 무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8월 2일 북경에 도착한 연행사 이홍주는 그동안 역대 연행사들이 구축해온 북경에서의 인맥을 통해 극비리에 진행되었던 서광계의 조선감호 제안을 알게 되었다. 이홍주는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하여 조선감호에 대해 항변하였고 드디어 9월 6일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조선감호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확인을 받아냈다. 9월 9일 서광계는 계급은 5등급 승진하였지만 사실상 조선관련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관직으로 임명되면서 서광계의 조선감호 제안은 철저히 무산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조선감호 제안에 감추어 은밀하게 진행하려던 서광계의 조선선교계획도 철저히 무산된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교회자료에 의해 밝혀진 서광계의 조선선교계획
Ⅲ. 서광계의 조선감호 상소
Ⅳ. 연행사 이홍주에 의해 확인된 서광계의 계획 무산
Ⅴ. 서광계 계획의 최종 부결
Ⅵ.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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