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옥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0집
발행연도
2013.10
수록면
10 - 42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시대의 토지 간척은 16세기 중앙의 권력층에 의해 전개되었다. 17세기에는 저수지와 제언 등 수리시설이 발달하면서 대규모 간척지가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서남해 도서지역의 경우 17~18세기에 도서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크게 변화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렇다면 도서 이주민들은 섬에서 어떻게 경제생활을 영위하였을까? 섬에서 토지는 언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까? 토지간척에 필요한 기술과 노동력은 어떻게 마련하였을까? 이러한 의문에서 제언을 축조한 사람들, 제언 축조 이후 관리방식, 간척지의 위치 비정, 간척으로 인한 섬의 공간변화 등을 安佐島 前津堰(일명 앞너리들) 契文書를 통해 재구성하였다.
조선시대의 안좌도 해역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가운데 비교적 큰 섬에 해당하였던 安昌島와 基佐島는 국용 목재를 배양하는 松田이 설치되어 있었고, 말을 기르는 牧場이 개설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송전과 목장은 토지를 개간하는데 있어서 더없이 좋은 입지조건이었다. 다만 갯고랑을 따라 유입되는 바닷물만 차단하면 온전히 농토로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갯벌에 제방을 건설하는 일은 간척지를 조성하는데 1차적인 요건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안좌도 전진언은 19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온다. 섬 주민들은 전진언 일대를 ‘언답, 앞널들, 앞너리들’이라 부른다. 전진언의 구조는 저수지·수로·수문·빼닫이문·원답[堰畓]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 주민들은 전진언을 관리하기 위해 원계[堰契]를 조직하였고, 계원들은 매년 총회를 개최하여 제방 관리 대책을 논의하였다. 원계 총회에서는 1년 동안 전진언을 보수·유지하는데 지출한 예산을 결산하고, 제언과 수문 관리자로 保主와 水口를 선임하였다. 보주와 수구는 전진언을 관리한 대가로 堰畓의 경작권을 얻었고, 대신 연말에 원계에 토지세를 납부하였다. 원계의 토지세는 제언 관리비로 비축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안좌도 방조제 현황과 『前津堰修契記』의 편제
Ⅲ. 안좌도 邑洞里 前津堰의 운영 실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1)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150-002648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