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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하태규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6권 제2호
발행연도
2013.11
수록면
37 - 72 (36page)
DOI
10.17068/lhc.2013.11.1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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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임란 초기 호남지방의 관군의 동원 실태와 활동 내용을 당시의 전라도의 실정과 전황의 추이에 따라 동태적으로 세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란 극복에 있어서 호남 관군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한 것이다.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또한 조선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란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민심이 크게 동요되어 전쟁을 수행할 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였다. 다행히, 당시 왜군이 전라도로 공격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라감사 이하 지방의 행정과 군사지휘체계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여기에 일부 지역 사족과 수령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민심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 이에 따라 전라도에서는 대규모 관군이 동원되어 근왕과 호남방어를 위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4월 말경 감사 이광에 의해서 8천의 근왕병이 소집되어 공주까지 북상하였다가 회군하였고, 이후 다시 북상한 4만의 근왕병은 6월 초 용인전투에서 왜군에게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 무너졌다. 그 뒤 병사 최원이 6월 중순에 2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다시 근왕을 위하여 경기도로 북상하여 활동하였으며, 왜군의 호남공격이 저지된 뒤에는 권율에 의하여 대규모의 관군이 동원되어 경기도로 북상하여 행주대첩을 거두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군이 전라도를 향하여 공격해 오기 시작하였다. 이 때 감사 겸 순찰사인 이광(李洸)은 전라도 각 고을의 관군을 동원하여 웅치(熊峙)ㆍ이치(梨峙)ㆍ전주(全州) 등지에서 왜군을 격퇴하였고, 진산ㆍ용담ㆍ진안ㆍ장수지역으로부터 금산ㆍ무주의 왜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등 지속적인 작전을 전개하여 왜군의 호남침공을 스스로 저지하였다.
이와 같이, 임란초기 전라도에서 대대적인 관군이 근왕병(勤王兵)으로 동원되어 전투에 임하였으며, 또한 왜군이 호남으로 공격해오자 전라도 전 지역에서 동원된 관군이 전선에 투입되어 호남을 지켜내어 임란기 국가의 보장(保障)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임란 초기 관군의 대응과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재고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임란 발발 직후 호남지역의 실정
3. 근왕을 위한 관군의 동원과 실태
4. 호남방어를 위한 관군의 동원과 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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