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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기철 (선문대학교)
저널정보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연구 아시아문화연구 제24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06 - 129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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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군의 침략을 맞아 피난생활을 했던 오희문의 체험을 통해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살펴 본 것이다.
오희문은 처음 일본의 침략 소식을 접했을 때, 이를 이전시기 있었던 왜란 정도로 생각하고, 이 전쟁이 조선 전역을 황폐화시키는 국제전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지 못했다. 이후 관군이 일방적으로 패전을 거듭하여 국왕이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가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그 책임을 조정의 신하와 변방 장수들에게 물었다. 더 나아가서는 사대교린의 우호의틀을 깨트린 일본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면 국왕인 선조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는 그의 사상적 기반이 성리학인 만큼 군신ㆍ상하간의 주종관계에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되면서 조선이 무를 무시하고 문만 숭상한 결과 일본군에게 쉽게 패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오희문은 피난 과정에서 자신의 체험과 여러 가지 소식을 통해 일본군은 인륜을 모르는 야만적 존재로 생각했다. 때문에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을 섬멸시켜야 하며, 더 나아가 쓰시마 정벌을 주장하였다. 그가 쓰시마에 대한 공격을 주장했던 것은 쓰시마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있어 선봉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을 낮게 평가한 조선의 전통적 시각에 의해 쓰시마 정벌이 이루어질 경우 조선이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성리학적 질서론에 따라 일본을 오랑캐로 생각했던 그의 화이론은 전쟁 경험을 통해 보다 강화되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일인식의 변화조짐도 나타냈다. 그는 피난생활 중 일본에 관한 정보를 빠짐없이 탐문하여 전황을 파악하였다. 또 자신이 접한 일본에 관한 정보는 빠짐없이 『쇄미록』에 남겼다. 이러한 모습들은 그가 일본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패전책임론
Ⅲ. 쓰시마(對馬島) 공격론
Ⅳ. 대일인식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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