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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영오 (대저중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0집
발행연도
2014.3
수록면
39 - 79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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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하대를 신라의 쇠퇴기인 羅末과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진성여왕 3년 농민봉기 이전의 신라하대 중기 사회의 안정을 언급한 사료들도 다수 있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사료들의 의미를 과소 평가했으며,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하였다. 하지만 사료에 근거한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다면적으로 검증해볼 여지도 있다.
『삼국사기v』에서 三代의 시기구분은 王系를 근거로 한 것으로 하대를 말세, 또는 말기의 의미로 설정하지는 않았다. 말세라는 표현은 하대 전후시기에도 등장하며,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리 전개될 수 있는 것으로 하대 시기와 직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신무왕의 즉위 이후 하대 초기의 왕위계승 분쟁은 일단락되고 신라 사회는 안정을 되찾았다. 당은 신라에 원군을 청할만큼 하대시기 신라를 군자국으로 인식하였고, 이것은 당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때문에 이른바 ‘羅末’의 시간적 범위와 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이를 하대와 동일시하는 시각은 좀 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진성여왕 3년의 농민봉기는 시작부터 왕조 부정을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역사적 조건과 조응하여 신라체제를 붕괴시키고 신라를 삼국으로 분열시켰다. 이때를 신라말과 후삼국의 시대적 전환기로 인식한 기록들이 보인다.
스스로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한 후에 멸망한 백제,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는 신라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내부에서 붕괴되었다. 5대 10국과 당 말기가 구분되는 중국과는 달리 우리는 신라의 분열과 후삼국의 재편, 신라의 말기가 동시에 진행되었고, 신라말과 후삼국시대라는 인식도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라하대의 설정과 신라말
Ⅲ. 하대의 안정과 신라말 인식의 등장
Ⅳ. 신라말 인식의 확산과 후삼국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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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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