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홍철 (신문박물관)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3 겨울호 제36권 제4호 (통권 133호)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201 - 228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근대 한국사회에서 ‘나체화(裸體畵)’는 여성의 알몸을 그린 그림을 지칭하는 용어로, 서양 미술의 유입과 인쇄출판의 성장 속에서 등장하였다. 나체화 중에서도 누드화는 서양 예술의 하나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동시에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글은 1920년대 다양한 나체화의 수용과정을 살펴보고 예술과 외설의 사회적 의미와 경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기존 연구들은 누드화 논란이 서양 미술에 대한 이해 부족과 당대 유교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총독부 검열이 일부 누드화를 외설로 간주하고 통제하여 누드화가 예술로 정착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초기 일본과 달리 여성 나체를 표현하는 데 비교적 관대했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여성의 알몸을 그린 나체화가 사회적 허용 아래 범람하였다. 신문·잡지에는 성애(eroticism)와 연관된 여성 나체 삽화와 일본의 성(性)서적 광고가 수록되었다. 나체화가 성애의 서사와 결합한 경우에도 검열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편 1922년 총독부가 주도한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면서 서양 누드화가 대중 앞에 등장하였다. 나체화가 범람하던 시기, 누드화는 서양 미술이자 동시에 성애의 도상(圖像)이었다.
여성 나체라는 표현대상 그 자체나 성애의 서사는 예술과 외설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 이 시기 예술과 외설은 대상에 내재한 속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나체화를 다루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같은 나체화라 하더라도 감상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와 방식에 따라 예술 혹은 외설로 간주되었다. 나체화는 예술과 외설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행위와 외설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목차

Ⅰ. 머리말
II. 나체화, 그리고 예술과 외설의 의미
III. 초기 나체화의 수용과정
IV. 예술과 외설 판단의 기준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37)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150-001476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