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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소남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4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201 - 249 (4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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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남한강유역의 대홍수를 계기로 창립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원주그룹은 1973년 남한강유역수해복구사업과 한우지원사업, 1976년 원주원성수해복구사업 등의 추진을 통해 수해를 입은 농민과 광부들을 위한 긴급구호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한편, 농촌지역에서의 부락개발운동과 신협운동을 통한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을 3개도 13개시·군, 80~90여 개 부락과 10여 개의 탄광지부에서 광범위하게 전개해 나갔다. 이 글은 1970년대 전반 원주그룹에 의한 부락개발운동이 전개되는 속에서 농촌지역의 구판장과 소비조합이 설립·운영되는 과정, 1970년대 후반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협동조합 원칙에 입각한 구판사업이 운영토록 추동하였던 과정과 특징, 새마을운동에 의해 설립·운영되었던 새마을구판장과 재해위의 추동에 의해 구판장·소비조합과의 비교 등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1970년대 재해대책사업위원회는 관할 농촌부락에서 부락개발운동을 전개하면서 농민의 자체 요구와 희망에 따라 구판사업의 설립·운영을 지원하였다. 당시 災害委의 지원을 받아 부락에서 추진된 구판사업은 부녀구판사업과 농산물구판매사업, 소비조합사업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전반 재해위의 추동을 받아 농촌부락에서 전개되었던 구판사업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협동조합 원칙에 입각해서 정상적으로 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는 농촌부락의 농민들이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의 부족과 이를 보완할 만한 지속적인 소비조합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 등이 나타난 결과였다. 1970년대 중반 災害委는 작목반과 부락총회를 중심으로 한 부락개발운동이 정체하게 되자 농촌부락 내 신협을 중심으로 부락개발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방침 속에서 신협운동이 활발히 전개해 나갔으며, 농촌부락 내 설립된 구판장과 소비조합은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협동조합의 7대원칙에 입각해서 조합원에 의해 자발적, 자립적, 자주적으로 운영되도록 추동되었다.
1970년대 농촌지역에서 농민이 설립·운영한 구판장과 소비조합은 신협조직과 함께 농민 주도의 농촌개발운동인 부락개발운동의 주요 협동조직체였을 뿐만 아니라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구판사업을 중심으로 한 소비조합운동이 추진되면서 신협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는데 있어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 災害委관할 농촌지역에서 전개된 소비조합운동을 통해 1970년대 농민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주요 기반이 되었으며, 새마을운동과 농협·마을금고를 중심으로 한 관제협동조합 등 관 주도의 농촌근대화정책에 맞서 농민지향적 협동조합운동의 전개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원주그룹의 협동조합론과 소비조합운동
Ⅱ. 1970년대 전반 부락개발운동과 구판사업
Ⅲ. 1970년대 후반 신협운동과 구판사업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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