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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泳鎬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2호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5 - 60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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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국왕은 이혼과 재혼이 빈번하였다. 원래의 왕비를 폐하고 새 왕비를 맞이하는가 하면, 元妃 외에 次妃가 존재하였다. 나아가 왕의 첩 인 後宮도 여럿 존재하였다. 여기서는 이들의 혼인 문제를 검토하였다.
국왕의 일상적인 삶은 왕자로서의 출생, 태자책봉, 혼인, 즉위의 순서로 이행하였다. 먼저 태자 책봉 의례를 살폈다. 태자 책봉의식과 이를 축하는 의례가 왕궁에서 성대히 베풀어졌음을 확인하였다. 국왕의 혼인에서는 중국식 의례가 행해졌으며, 궁궐에 들어오기 전의 부인 책봉, 궁궐에서의 왕비책봉, 그리고 왕후 책봉의 단계가 있었다.
한편 王母나 王妃가 당으로부디 책봉 받은 사례가 있었다. 신라에서는 태후, 왕후라 불렀으나 당에서는 대비, 욍비로 책봉하여 인식의 차이가 있었 다. 또한 책봉서에 나타난 이들의 성씨는 실제가 아닌 가공의 성씨였다. 이는 신라가 君子國으로 중국에 인식되면서, 동성혼인 사실을 숨기고 중국식 예제에 맞추기 위해 실제와 다른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후궁은 욍비가 아니지만, 욍비의 범주로 파악하였다. 후궁은 1명 혹은 그 이상이 존재하였으며, 신분은 원칙적으로 진골이섰다. 따라서 욍실의 풍경은 중대에는 1명의 왕비가, 하대에는 1명 혹은 복수의 왕비가 존재하였고, 거기다가 다수의 후궁이 공존하였다. 이로써 국왕과 왕비, 후궁이 어우러진 왕실 구성원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婚姻과 나이
Ⅲ. 婚姻의 절차와 책봉
Ⅳ. 王妃와 後宮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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