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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미화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4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63 - 9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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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안동을 대표할 만한 처사적 문인, 우천愚川 정칙鄭?의 산수관山水觀과 산수시山水詩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연구되었다. 조선의 산수문학은 17세기 이후, 큰 폭의 변화를 겪었다. 첫째는 명청교체로 인해 중국의 산수를 선망하고 노래하던 종래의 인식이 조선의 산수를 진경眞境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다. 두 번째는 양란을 겪은 뒤 지방사족들의 성장에 힘입어 지방문화의 가치가 재평가 되면서, 주변의 산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세 번째는 산수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내재한 ‘리理’를 미의 본질로 보려는 이학적 경향이 조선전기 문인들에게서 강했다면, 후기로 내려오면 산수 자체를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를 시문으로 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져 갔다.
정칙은 그러한 후기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산수관은 각각의 산수가 드러내는 미적 개성을 중시하고, 어떤 이념적 규범화에 기반하여 승경勝景의 우열과 고하를 논하는 태도에 반대하였다. 이는 만년에 친밀한 교유를 나누었던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와 이루어진 일련의 논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응조는 퇴계 성리학을 계승한 전통적인 이학가적 면모를 지닌 규범적 미의식의 소유자였다. 반면 정칙은 외삼촌인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 형제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당시로서는 매우 개명적인 세계관을 지닌 문인적 기질이 우세한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기질과 세계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양인의 산수관이 확연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정칙은 승경의 개성을 중시하는 산수관에 기초하여 자신의 은둔처(우천)를 선정하고 그곳의 승경을 찬미하는 한시를 지었을 뿐 아니라 뜻을 함께 하는 당시 향촌 지식인들과 안동 인근의 승경을 유람하고 그 경관의 미적 특질을 즐겨 문학으로 형상화했다.
정칙의 이러한 산수관과 산수시 창작은 조선 산수문화사에서 선구적 의의가 있다. 왜냐면 중앙문단을 주도하고 있던 경화세족 자제들이 동유東遊(금강산 유람) 열기에 따라 다양한 산수관과 산수평을 쏟아내면서 본격적으로 진경시眞境詩 창작에 참여하기 이전에 정칙이 한발 앞서 이러한 의미있는 심미審美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산수관
3. 산수시 연구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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