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鄭鉉淑 (열화당책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12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307 - 307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강유위는 11, 12장에서 각각 취할 만한 隋碑, 비루한 唐碑를 논한다.
제11장「取隋」편은 수나라 비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말한다. 수나라 비는 前代를 통합한 분위기를 지녀 좋은 것이 많으므로 본받아도 좋다. 육조를 이은 수나라는 글씨에도 그 遺風이 있어 필획이 준엄하고 형태는 아름다우면서도 순박함이 남아 있다. 수나라 비는 대부분 훌륭하지만, 옛날의 도톰한 필획이 없어지고 준엄하고 상쾌한 분위기만 좇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지나치게 정연한 당나라 비에 비하면 취할 만하다. 후대에도 수나라 비는 비교적 좋은 비평을 받았다. 송나라 금석학자 歐陽脩는 ‘수나라에서 주로 활동한 歐陽詢?虞世南은 육조비의 분위기를 이어서 훌륭한 서가’라고 했다.
제12장「卑唐」편은 옛 맛을 잃어 비루해진 당나라 비는 천천히 배워도 된다고 한다. 당나라에 이르러 書學이 설치되고 명서가가 많이 배출되고 서론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다. 그러나 전대의 호방한 분위기는 사라졌고, 형태는 부드럽고 필획은 둥글게 변했다. ‘초당사대가’인 歐陽詢?虞世南??遂良?薛稷의 필의는 순박함을 잃어 예스러움이 사라졌고, 중당의 顔眞卿, 만당의 柳公權에 이르러 완전히 망쳐졌다. 당시 서가들은 결구에는 뛰어난 반면, 글씨는 비루하고 경박하게 변했다. 이런 당나라 글씨를 배우게 되면 결구는 조금 갖추겠지만 원류에서 멀어진다. 모든 학문은 전통을 귀하게 여긴다. 고문은 양한 이후 단절되었고, 서예는 육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따라서 당나라 비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나라 비 가운데 ‘小唐碑’를 비롯한 일부 좋은 것도 있지만, 당시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당나라 비를 권하지 않는 것은 그 천박함 때문이 아니고, 그들이 마멸된 번각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번각본조차도 매우 드물다. 반면 육조비는 거의 매일 출토되어 초탁본과 같으니 마땅히 그것을 취해야 한다. 당 이래로 모두 당나라를 숭상했고, 송?원?명나라는 兩晉의 법첩을 본받았다. 그러나 당을 본받은 서가 중에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청나라의 鄧石如?包世愼?張裕釗는 남북조비를 본받았기 때문에 명서가가 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제11장 取隋(수나라 비도 취할 만하다)
제12장 卑唐(당나라 비는 비루하다)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5-900-002803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