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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봉곤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0집
발행연도
2015.4
수록면
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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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9년 유림들이 국가와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표명했던 파리장서운동 중 호남지역 유림들의 동향과 의의를 살펴본 것이다.
19세기 후반 호남 지역은 노사 기정진, 간재 전우, 연재 송병선, 면암 최익현 등의 노론계열을 비롯해서 면우 곽종석 등 남인계열 등 다양한 학맥이 혼재해 있었다. 이들은 1902년 이후 노사학설을 둘러싸고 학맥간의 대립이 격심하였으며, 시국에 대한 대처방식에도 차이를 노정하여 간재 전우, 연재 송병선 학맥 등은 도학을 중시하는 자정운동에 들어갔고, 노사학맥이나 면암 학맥은 국권침탈에 맞서 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도 1910년대에 독립의군부 활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정운동에 들어갔다.
1919년 3·1운동 당시 호남유림들의 전체적인 성향은 이러한 자정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종이 승하하자 호남유림들은 곳곳에서 망곡례를 행하였고, 고종의 인산에 참가하기 위해 다수 상경하였다. 상경한 호남유림들은 고종의 3년상과 순종의 복위를 주장하였고, 9명 정도의 소수의 인원만이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호남지역 유림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간재 전우학맥이나 후석 오준선 등의 노사학맥 등이 자정운동을 고집함에 따라 호남지역 유림들의 참여가 저조하였던 것이다. 대한독립의군부 활동에 참여하였던 면암 최익현 문인을 중심으로 소수의 연재·노사·면우 학맥의 문인이 서명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다만,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학맥과 당파를 초월하여 서명이 이루어졌다는 점, 파리장서운동 이후 일부 호남 유림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거나 사회주의에 기울어지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목차

1. 머리말
2. 1910년대 호남지역 유림의 동향
3. 서명자의 학맥과 분포
4. 호남지역 파리장서운동의 한계와 의의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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