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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동일 (국가보훈처)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4집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41 - 8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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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지방유림의 눈에 비친 3·1운동의 형상을 확인하고, 지방유림이 독립운동에 접근하는 초기 경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자료는 김황의 일기인 「기미일기」(1919)를 주로 활용했다. 김황 일행은 스승 곽종석의 지시에 따라 1919년 2월 말 상경하여 약 10일간 3·1운동의 진원지인 경성에 체류했다. 「기미일기」에는 김황이 경성 체류 당시 보도 듣고 경험한 3·1운동에 관한 많은 정보가 실려 있어 3·1운동에 대한 지방인의 인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선, ‘사건’의 발단과 관련해 김황 일행이 상경하기 전인 1919년 1~2월 고종 급서에 대한 지방유림의 인식과 반응을 주목하였다. 이어, 김황 일행이 2월 27일부터 3월 7일까지 경성에서 직,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들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김황 일행이 임유동 등과 나눈 대화를 통해 유림의 독립운동 노선과 목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기미일기」에 따르면, 1919년 1~2월 지방유림은 고종을 위한 상복의 착용여부와 착용 기간을 놓고 깊이 고심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김황의 스승인 곽종석은 3년복을 강력히 주장하여 고종을 망국의 군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고, 고종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기 위한 독립운동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경성에 도착한 김황 일행은 인산 전야에 고종독살설을 접했고, 청년·학생들의 희생적인 만세시위와 체포 광경을 목격하며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김황 일행은 3·1운동의 가치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도이념에 대해서는 이질감을 느꼈고, 이로 인해 보다 유교계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 즉 김창숙이 기획한 독립청원운동(파리장서운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경성에서 전해진 悲報와 지방 유림의 반응
3. 김황 일행의 경성에서의 3·1운동 경험
4. 독립의 개념에 관한 신구 청년의 논쟁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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