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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창원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 우리文學硏究 제46집
발행연도
2015.4
수록면
33 - 5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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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강 정철의 전후미인곡의 창작 시기와 장소에 대한 재론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는 몇몇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송강의 전후미인곡은 1587년에 창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1587년은 1585년 그가 낙향한 시기를 기점으로 햇수로 3년째가 되는 시기이다.
둘째, 송강의 전후미인곡이 지어진 장소는 창평이 아닌 순천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송강은 전후미인곡이 지어진 시기인 1587년에 순천에 머물고 있었고, 1588년 창평으로 돌아왔다.
셋째, 송강이 당시 순천으로 낙향한 것은 일차적으로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당시 동인들과의 정치적 싸움에서 패배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 외에도 그의 낙향에는 매우 사적인 동기가 개재하고 있었다. 그가 하필 창평이 아닌 순천으로 낙향한 것은 당시 송강의 측실이 순천에 홀로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넷째, 송강의 전후미인곡은 조위의 〈만분가〉에서 창작의 모티브를 얻었다. 송강의 전후미인곡이 하필 〈만분가〉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지역적 인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즉, 송강이 순천 은거 시에 조위의 〈만분가〉를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조위의 〈만분가〉가 지어진 곳이 바로 순천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전후미인곡에서 신하인 여성의 임에 대한 태도는 혼란스럽고 착종되어 있다. 그에 따라 임의 모습도 이중적이다. 임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동시에 세속적·속물적 존재로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 양상은 임금/신하의 차원에 남성/여성의 차원이 간섭함으로써 벌어지는 것이다. 순천에서의 송강은 버려진 신하인 동시에 여성에게는 고난을 안긴 남성으로서의 처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쓰라린 아픔을 비슷한 상황의 여성에 투사함으로써 여성이 당하는 고통을 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동일화와 자기 성찰의 경험이 남성인 임의 형상을 세속화·속물화하는 요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목차

【국문초록】
Ⅰ. 문제 제기
Ⅱ. 전후미인곡이 지어진 시기
Ⅲ. 전후미인곡이 지어진 장소
Ⅳ. 송강이 전라도 順天으로 내려간 사연
Ⅴ. 〈萬憤歌〉와의 지역적 관련성
Ⅵ. 맺음말 - 결론을 대신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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