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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걸순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3輯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 - 3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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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병환은 1878년 곡산 연씨 집성촌인 충북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에서 출생하였다. 『光武量案』에 기재된 토지 소유 관계를 분석한 결과, 그는 중농 수준이었다. 이는 그가 중국으로 이주 이후 국내에 남은 가족의 생계를 염려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지원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해된다.
그는 1897년을 전후하여 관립외국어학교를 다녔고, 궁내부주사를 거쳐 인천과 부산 등 주요 해관에서 방판으로 근무하였다. 또한 양지아문에 근무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주일공사의 일본 사행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1907년 중국으로 이주한 그는, 안동과 용정세관에 근무하며 한인사회의 주도적 인물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대외 교역 업무를 담당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다. 그는 이 같은 경제적 여유를 토대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1919년 용정 3?13 시위 때 피체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상해세관으로 옮겼는데, 일제는 그를 계속 추적 감시하여 끝내 독립운동과 전혀 무관한 福州 三都澳로 쫒아냈다.
그는 1926년 상해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우여곡절 끝에 88년만인 2014년 국내로 봉환되어 영면하게 되었다. 연병환의 민족운동은 동생, 딸과 사위, 외손녀로 이어지며 더욱 빛을 발하였으니, 그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독립운동을 견인한 인물로 평가하여 마땅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도안 세거와 사회경제적 배경
Ⅲ. 연병환의 민족운동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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