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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인욱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2輯
발행연도
2015.7
수록면
107 - 14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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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에서는 기원전 2세기~서기 5세기의 삼강평원의 곤토령문화와 봉림문화의 고고학적 문화를 중심으로 그 계통을 살펴보고, 그들의 성립 및 소멸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와 같이 사서에 기록된 각 민족의 시공적인 범위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을 맞추는 중국학계의 연역적인 접근을 통하여 삼강평원=읍루설은 실제 고고학자료와 배치됨을 밝히고, 삼강평원의 곤토령을 읍루, 봉림문화를 물길로 인식할 경우 이후에 발흥하는 말갈문화와 고고학적 문화에서 보이는 차별성을 설명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본고에서는 삼강평원에 사람들이 집약적으로 거주하는 기원전 2세기~서기 6세기를 전기단계인 곤토령문화시기(기원전 2~서기 2세기), 발전기인 봉림문화시기(기원전 2~5세기), 그리고 말갈계문화로 전환되는 물길-두막루단계(서기 6~7세기)로 나누었다. 전기의 곤토령문화의 고고학적 문화상은 목단강유역의 東興文化, 부여문화(포자연문화), 연해주의 團結문화(=올가문화) 등과 가까운 바, 옥저계의 문화가 북상해서 삼강평원에 안착된 결과로 보았다. 또한, 이들 유적은 폴체계문화와는 다른 계통으로 이렇게 옥저계문화가 북상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삼강평원이 상대적으로 북쪽에 고립되어 있는 고위도지방이며 저지대이지만, 농업생산력이 아주 높은 흑토지대라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런데 곤토령문화에는 폴체문화의 요소들도 적지 않으며, 삼강평원의 동부지역에도 폴체문화의 일종인 완연하 유형이 존재하는 바, 추위에 대한 적응잠재력이 큰 옥저계 주민들이 북상하여서 남하한 폴체계 집단 일부와 융합하여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발전기인 봉림문화 단계에 삼강평원에 고환경 자료로 볼 때에 사람들의 적극적인 개간사업 등으로 소택지가 줄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시기의 또한, 집약적인 농경으로 사회를 유지했기 때문에 사회의 복합도가 증가하며 인구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송눈평원 지역은 부여계의 유적이 급감하고 대신에 유목계의 문화가 들어오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 된다.
봉림문화가 사라지는 5세기말~6세기는 일종의 전환기로 옥저계문화가 말갈계로 교체되는 시기로 사서에 물길과 두막루가 등장하는 시기로 대표된다. 이후 6세기 이후에는 삼강평원의 서부의 동인유형 및 아무르강 일대의 나이펠드 등 만주 북부 전역의 문화는 말갈문화계통으로 재편되었다. 이후 이 지역의 판도는 말갈계문화로 재편되게 되었고 삼강평원 지역의 봉림문화는 사라지고 이후 여진세력이 진출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공동화가 된다.
이와 같이 본 고에서는 고고학 자료를 근간으로 하여 사서, 고환경 자료, 민족지자료 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한 결과, 삼강평원의 고대문화 전개는 고대 옥저계문화의 확산 및 물길, 두막루, 말갈 등 사서에 기록된 집단의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북방민족사에서 매우 중요하며 독특한 위치라는 점을 밝혔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삼강평원의 고고학적 문화양상
Ⅲ. 곤토령/봉림문화의 문화계통 분석
Ⅳ. 고찰 - 삼강평원 고대문화의 발전과정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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