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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종원 (한밭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5輯
발행연도
2015.7
수록면
1 - 4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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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사비기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함께 불교가 현실정치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사찰의 조영을 통해 살펴보았다. 본문을 통해 이들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비기 불교의 성격과 사찰의 조영과정, 그리고 조영 배경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사비기 불교는 현세이익적이며, 현실사회에 깊이 침투해 있었다. 그 범위도 특정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위로는 왕을 포함한 왕족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존하는 자료는 대부분 왕도지역에 한정되고 있지만 사비기에는 왕도뿐만 아니라 백제 전지역에 걸쳐 다수의 사찰이 조영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사찰과 불상을 조영한 주체는 국가와 왕실, 중앙과 지방의 귀족, 그리고 일반인 등도 포함되었다.
이와 같이 광범위한 계층이 사찰조영에 참여한 배경은 사비기 백제 불교가 지닌 現世利益的인 성격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불교확산 노력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때 주목되는 것이 법왕대의 ‘禁殺生令’이 아닌가 한다. 물론 국가나 왕실차원의 사찰 조영과 귀족이나 일반인들의 사찰 조영에는 그 목적이나 배경 등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사찰을 조영한 경우에는 당시의 정치적 변동 등에 의해 일정한 정치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귀족이나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現世에서 복을 구하고, 來世를 기원하기 위한 목적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비기 사찰의 조영 배경에는 불교가 지닌 사상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사회적인 현실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목적도 내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불교가 현실정치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백제말기에 사찰에서 발생한 각종 異變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능사와 제석사를 통해서는 왕권과 귀족세력간의 力學關係를 살펴볼 수 있으며, 왕흥사를 통해서는 聖王-威德王-亡王子-武王으로 이어지는 王統의 정통성 문제, 그리고 미륵사를 통해서는 선화공주로 상징되는 익산지역의 재지세력과 사씨왕비를 중심으로 한 사씨세력과의 역학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즉 사찰 조영과정을 통해 왕권의 위상 정립, 왕권과 귀족세력과의 타협, 귀족세력의 권력 투쟁이라고 하는 정치적 변동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에 조영된 사찰인 오합사는 귀족세력의 위상과 중앙과의 정치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찰이 갖는 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사찰에서 백제멸망을 예시하는 각종 이변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며, 사찰이 백제멸망의 한 요인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사비기 불교의 성격과 사찰의 조영
Ⅲ. 사찰 조영의 정치적 성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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