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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72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67 - 9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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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묘지명을 분석한 결과, 고려시대 관인층이 사망한 장소는 크게 집과 사찰 두 곳으로 압축된다. 전체 329건의 묘지명 중에서 사망 장소가 기재되어 있는 경우는 143건이며, 이 중 집에서 사망한 경우는 122명, 사찰에서 사망한 경우는 21명이다. 이를 시대별로 분석하여 보면, 무신정변이 일어나는 의종대까지 고려의 관인층은 전체 111건 중에서 집이나 사찰에서 사망한 사람이 55건이며, 이 중 집에서 36명, 사찰에서 19명이 사망하였다. 집에서 사망한 사람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대략 5~4명에 1명꼴로 사찰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 무신정권기에는 사망 장소가 확인되는 47건 중 2명만이 사찰에서 사망하였다. 충렬왕대 이후에는 사망 장소가 확인되는 41명 모두 집에서 사망하였다. 고려 관인층은 의종 12~13년에서 명종 15년 사이에 더 이상 사찰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되었으며, 세속적 장소인 집에서 임종을 맞는 관습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발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신정변의 발생으로 개경의 많은 사찰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정변 이후에도 사찰 및 승려들은 계속해서 무신정권과 갈등을 빚었으며, 정변 발생 이후 치안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개경 근처의 사찰들은 도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사찰은 요양을 하거나 안온한 죽음을 맞기에는 더 이상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따라서 사찰에서 임종하는 고려 관인층이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급감하게 되었으며, 사찰에서 임종하는 것을 회피하는 풍조가 무신정권 내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보편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유교적인 관념이 강화되고 유교적 상장례에 대한 의식이 성장하면서, 사찰에서 임종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합리화되고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려후기에는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하더라도 사찰이 아닌 세속적 장소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려 관인층의 생각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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