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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광식 (원주역사박물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1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392 - 422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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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왕의 즉위와 웅진 천도를 주도한 인물이 목협만치, 조미걸취, 해구이다. 그런데 목협만치와 조미걸취는 병관좌평 해구에 밀려 왜로 건너가거나 세력을 상실하였다. 해구가 웅진초기 정국을 주도하는 가운데 476년 곤지가 귀국하였고, 곤지를 중심으로 반해구세력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곤지의 세력결집은 오히려 해구를 자극하였고, 결국 해구가 곤지를 제거하고, 문주왕까지 시해하게 되었다. 곤지의 사후 반해구세력은 곤지를 대신해 진씨를 중심으로 결속하였다. 진씨 세력은 해구에 대항하기 위해 웅진 주변 세력을 규합하였다. 웅진 주변 세력은 웅진 천도 이후에도 여전히 중앙귀족이 아닌 지방의 수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반해구세력으로서 진씨와 결탁하면서 최고 중앙귀족으로서의 지위인 좌평을 보장받았고, 반해구세력은 결국 해구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다. 동성왕 초기 웅진 주변 세력이 다수의 좌평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동성왕 즉위에 기여하였던 사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해구의 반란을 토평한 반해구세력은 삼근왕 死後 곤지의 아들 중 嫡子로 인식되는 동성왕을 옹립하였다. 동성왕의 어린 나이와 미약한 국내기반은 그를 즉위시켜 정국을 주도하려는 세력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다. 한편 동성왕의 즉위는 왜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고구려를 견제한다는 현실적인 이해가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왜의 입장에서도 선진문물의 안정적인 공급, 고구려의 팽창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도 친왜적 인물인 동성왕의 즉위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동성왕의 즉위는 웅진초기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권력을 온존하려했던 백제 지배 세력의 요구와 백제 왜 양국 간의 이해가 합치된 결과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웅진초기의 지배 세력과 해구의 권력 장악
3. 곤지의 귀국과 반해구세력의 결집
4. 반해구세력의 승리와 동성왕의 즉위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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