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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덕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68호
발행연도
2017.7
수록면
97 - 133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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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이주한 外來人들의 현황, 존재양태,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고구려에 중국계 인사들이 적지 않게 망명하였고, 낙랑군과 대방군 병합 이후 그 유민들이 대거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고구려는 중국계 외래인의 세력기반을 그대로 존중해주다가 점차 고구려의 지배층으로 편제하였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고위관직까지 승진하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중국계 流移民과 전쟁포로에게 토지를 분급하거나 일정 기간 부세를 경감시켜주어 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유도하였다. 백제로 이주한 낙랑·대방유민들은 백제에 한자문화와 더불어 유학을 전래해주었고, 그들 가운데 일부 가문은 백제의 최고 신분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백제는 개별적으로 歸化한 외래인의 경우는 戶籍에 편제하여 관리하였다. 중국계 망명 인사와낙랑·대방유민들은 고구려와 백제의 한자문화 및 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들이 중국어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교문서를 능숙하게 작성할 수 있는 학문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중국 왕조에 파견한 사신으로 널리 발탁되었다. 9세기 후반에 신라의 경문왕과 헌강왕이 漢化政策을 추진하면서 國王 또는 東宮의 近 侍職에 유학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중국에서 귀화한 관료가 다수 등용되었다. 신라 當代에 중국계 인물들의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지만, 그 후예들은 고려에 중용되어 학문실력에 의거하여 관리를 등용하는 내용의관료제 운영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6세기 중반에 백제 성왕이 반백제계 왜인을 견제하거나 왜에 군사를 요청하기 위해 왜계 백제관료들을 왜에 사신으로 파견하였고, 또한 군사적 목적으로 왜계 백제관료를 등용하였음이 확인된다. 4~6세기에 고분벽화와 토우를 통하여 고구려와 신라에 西域人으로 구성된 流浪樂人들이來往하여 百戱와 舞樂을 공연하였음을 살필 수 있다. 서역인들은 異國의 문화를 삼국에 전해주어 삼국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대문화가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게 하는 데에도 一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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