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훈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39·40輯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65 - 96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高句麗는 건국 이후로부터 5개의 部가 중심이 되어 통치되었으며, 통치방법으로서 주로 部體制論과 集權國家論로 설명된다. 본고는 고구려의 통치질서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종족지배질서’라는 측면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먼저 고구려는 濊貊族으로서 같은 예맥 세력의 통합과정을 거쳤다. 다만 같은 예맥이라 하더라도 소국집단들은 고구려 중앙에 진출하여 5부에 편재된 반면 정치세력화를 이루지 못한 옥저나 예는 5부에 편재되지 못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 여기서 비롯된 5부민과 非5部民간에 차별은 다른 이종족세력 통치에도 적용되었다.
4세기부터는 중국에서 5호16국이 성립되면서 중국으로부터 유이민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고구려는 활발한 전투를 벌여 많은 전쟁포로들을 확보하였다. 특히 5세기에는 영역확대가 이루어지면서 백제와 신라를 포함한 韓세력과 거란·말갈·지두우 등을 흡수, 북연왕 풍홍이 백성들을 이끌고 항복하는 등 다종족 국가로서 완성형을 이루었다.
이러한 다종족 국가의 운용은 토착인을 이용한 간접통치로 이루어졌으며, 5부민의 예하에 非5부민 예맥 집단 이종족을 대상으로 한 공납적 종족지배질서를 이룩하였다. 또한 고구려는 포로나 來投者들을 대상으로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해 변방으로의 사민정책을 펼쳤다.

목차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尹致昊의 성장과정과 초기 정치활동
Ⅲ. 尹致昊의 親日활동 양상과 그에 대한 評價
Ⅳ. 기존의 歷史敎科書의 尹致昊와 親日派관련 敍述의 문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389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