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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빈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4호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39 - 68 (30page)
DOI
10.31218/TRKH.2019.06.1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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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지금의 경기도 연천 지역 소재 고구려 지명과 그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고구려 지명에 주목하였다. 철원군·부여군·우잠군의 영현으로 서술된 승량현·공목달현·소읍두현·장항현·마전천현이다. 이 지명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구려조와 신라조에 각각 전하는데, 군현의 영속관계에 다소 차이가 있다. 원전 자료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 중에서 원전 자료가 먼저 성립한 것은 고구려조였지만, 통일신라 시기의 인식과 사정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三郡縣의 명칭과 영속관계를 고구려 시기의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다만 三郡縣의 지명과 영속관계는 고구려 시기 諸城의 분포와 관계를 반영한다. 즉 임진강·한탄강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大路가 구축되었고, 강을 중심으로 諸城의 관계 즉 三郡縣의 지명이 설정되었다고 파악된다.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한 것은 5세기 후반이었다. 이때 부터 6세기 중반까지 연천 지역은 고구려 남방 교통로상의 거점이었다. 한강과 그 동남부의 육상교통로는 물론이고, 황해로 이어지는 수상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6세기 중반 이후 이곳은 고구려 남방의 경계로, 7세기에는 신라와의 각축이 치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임진강 이북의 연천 지역은 고구려의 영향력이 강고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대는 고구려 부흥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고 풀이된다. 5세기 후반 이후 연천의 주요 지점은 고구려의 영역으로 장기간 존속하였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보건대 현전 지명은 고구려의 역사적 유산으로 남진과 남방 경영의 역사를 반영한다고 이해된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연천 지역의 고구려 지명
Ⅱ. 고구려 지명과 교통로
Ⅲ. 연천 지역 경영과 고구려 지명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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