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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진 (문화재청)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3호
발행연도
2016.5
수록면
1 - 18 (18page)
DOI
10.17647/jss.2016.0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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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은 918년 철원에서 왕위에 오른 뒤 다음 해인 919년 자신의 기반인 송악(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건국 당시의 궁궐은 이전부터 사용되어지던 발어참성을 기반으로 이루어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광종이 즉위하던 해(950년) 부터 궁궐은 황제국에 걸맞은 규모로 확장되었다. 거란과의 전쟁 이후 개경으로 환도한 현종은 2년(1011년) 10월부터 5년(1014년) 정월까지 3년 이상에 걸친 공사를 통해 거란에 의해 파괴된 개경을 본래 모습으로 복구했으며, 11년(1020년) 8월부터 14년(1023년) 8월까지 4년에 걸친 중건을 통해 수도로서의 면모를 보다 확실하게 하였다. 궁성은 경효왕(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2차 침입을 거친 뒤에도 경령전 등의 전각을 중심으로 1392년까지 사용되었다.
지난 2007년부터 개성 고려궁성에 대한 남북공동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성과는 첫째, 정전(건덕전=천덕전=대관전)을 중심으로 하는 궁성 서부건축군의 건물배치 및 공간활용 양상이 규명되었다. 둘째, 경사지에 자리한 궁성의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원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등고선과 평행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군을 자리하게 하는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궁궐과 다른 고려궁성만의 독특한 축조 방식을 선택하였다. 셋째, 강화천도 기간을 제외한 고려시대 전 시기동안 사용된 궁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기와에 대한 명확한 편년의 기준안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목차

Ⅰ. 개성 고려궁성의 변천과정
Ⅱ. 개성 고려궁성 남북공동발굴조사 현황
Ⅲ. 개성 고려궁성 남북공동발굴조사의 성과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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