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호윤 (하얼빈사범대학)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59권 제3호(통권 제165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52 - 82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하곡선생조천기』는 하곡 허봉(荷谷許篈, 1551∼1588)이 선조(宣祖) 7년(1574년)에 명조(明朝) 제14대 황제 신종(神宗)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성절사행(聖節使行)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참가하여 기록한 사행일기이다. 이 사행에서 허봉은 24세의 젊은 나이로 서장관이란 큰 직책을 수행하였는데 이러한 직책과 그의 학문적 능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명사(明士)와 활발한 학문적 논쟁을 펼쳤다. 허봉 일행이 명조에 사행한 명목적 이유는 신종 황제 생일 축하였지만 당시 조선의 현안 문제였던 종계변무(宗系辨誣)와 함께 문묘종사(文廟從祀)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 종계변무는 이성계가 고려말의 이인임의 자손이라는 『명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의 잘못된 기록을 시정하려던 것이고, 문묘종사문제는 문묘에 배향하는 유현(儒賢)에 대한 시비인데 도통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로 조선조에 있어서는 중요한 정치문제이자 교학 문제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허봉은 명조의 생원(生員) 하성시(賀盛時), 국자감생(國子監生) 섭본(葉本) 등과 논쟁을 벌여 양명학의 이단성과 왕양명(王陽明)의 문묘종사에 대해서는 부당성을 강조하였고, 거인(擧人) 왕지부(王之府), 국자감에서 만난 양수중(楊守中) 등 명조의 주자학자와는 강한 연대감을 보였다. 허봉은 사행 중 상중(喪中)에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요동, 심양 지방의 풍습과 사인(舍人) 무리들의 무례한 행동을 보고 명조가 ‘이름은 중국이나 사실은 오랑캐와 같다(名為中國, 而其実無異於達子焉)’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예악문물(禮樂文物)’의 유무로 화이(華夷)를 구별한 허봉은 유교와 예악문물과 성현(聖賢)의 본향이라고 여겼던 명조에서 사학(邪學)이라고 여긴 양명학이 번창하고 있는 것에 더하여 도교신앙과 불교신앙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을 접하고서는 ‘명조=중화’ 인식에 회의를 하게 된다. 근세 유가 지식인의 ‘화이관’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즉 예의가 있으면 소인도 군자가 될 수 있지만, 예의를 잃으면 군자도 소인으로 전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악문물’이 존재하는 곳이 ‘華’이며 존재하지 않으면 ‘夷’로서 평가했던 것이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허봉과『하곡선생조천기』
Ⅲ. 조선의 양명학
Ⅳ. 허봉과 명사의 논쟁
Ⅴ. ‘중화(中華)·중국(中國)’이란 무엇인가
Ⅵ. 나가며
참고문헌
Abstracts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349-001092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