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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우석 (역사문제연구소)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53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399 - 43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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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도리이 류조의 1910년대 식민지 조선 조사의 기획과 과정을 재정리하는 것을 통해, 당시 식민지 조사가 가졌던 성격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도리이 류조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직후 식민지 조선 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요청으로 언어학자 가나자와 쇼자부로와 함께 학무국 촉탁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식민통치상, 그중에서도 특히 동화정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학술조사로, ‘일선동조론’을 밝혀 달라는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도리이 류조의 조사는 세 시기를 거쳐 변화한다. 첫 번째 시기에는 자신의 관심사였던 고구려 관련 유적에 대해서도 해석을 덧붙이려고 했고, 아직까지는 ‘일선동조론’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었다. 두 번째 시기에는 총독부 측에서 요구한 인종학적 조사에만 집중함으로써 ‘X민족’이라는 존재를 통해 ‘일선동조론’의 단초를 마련했다. 세 번째 시기에는 고적조사사업으로 조사가 합쳐지면서 그의 조사활동은 점차 주변화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도리이는 ‘X민족’론을 파기하고 ‘고유일본인론’을 중심으로 ‘일선동조론’을 주장하였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일선동조론’을 바탕으로 식민통치의 정당성 주장에 앞장섰다. 하지만 그 주장에서는 일제와 식민지 조선의 과거 관계를 현재와는 역전된 상태로 설정하고 있었기에 총독부 입장에서는 정책적으로 받아들이고 후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1910년대 도리이 류조의 식민지 조선 조사는 그 논리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도리이 류조의 조선 조사 개괄
Ⅲ. 도리이 류조 식민지 조선 조사의 과정과 결과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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