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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지혜 (한국미술연구소)
저널정보
나혜석학회 나혜석연구 나혜석연구 제8집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7 - 3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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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일본 유학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만들어진 사회문화적 · 역사적 현상이었다. 식민지 조선 근대 교육제도의 최정점에 위치한 제국의 고등교육기관들 중에서도 도쿄 여자미술학교는 여류미술가를 꿈꾸는 일본의 여학생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여학생들이 선망한 미술학교였다.
도쿄의 여자미술학교는 1900년 설립된 일본 최초의 여성 미술 전문교육기관으로 여성에게 미술을 교육하고 공예, 수공예를 가르쳐 여성의 자립의 길을 간구하고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며 전문 미술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여자미술학교는 당시 유일한 국립미술학교인 도쿄미술학교가 원칙적으로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여성교육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일본화와 서양화, 자수 등을 교수했다.
조선 역시 전문미술학교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일본 유학이 긴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반 여성에게 유학은 쉽게 누릴 수 없는 특혜였다. 재산가나 개화가문이라고 할지라도 여성들의 신교육에 주저하거나 봉건적 인습이 지배하던 당시로서 미혼 여성이 홀로 유학길에 오르는 행위 자체가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여성 유학생의 등장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 인식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이었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시대의 모범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근대기 동안 여자미술학교를 수학한 조선인 유학생의 수는 백여 명이 넘었으며,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회유한 이들의 여정은 미술가로서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자의 삶으로 이어졌다. 미술가가 되어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의 여성 유학생들은, 선각자, 선구자적 의식 속에서 신예술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고, 이를 조선에 보급하고자 힘썼다. 이는 나혜석과 백남순의 화업을 통해 구현되었으며, 장선희, 이숙종의 경우에서처럼 여성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유학 중에도 조선의 현실을 잊지 않으며, 조선 사회와 여성을 이상적으로 계도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선각자 혹은 선구자라는 호칭은, 이미 활동 당시부터 부여되었던 그들의 지위이자 사명이었다. 도쿄 여자미술학교 시절은, 그들의 예술관과 여성관을 확립하고, 나아가 미래를 설계한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유학을 떠나 제국을 경험한 이들은, 선구자적인 화가이자, 여성 교육인으로서, 시대의 선각자로서, 이들에게 부여된 과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내했기에 이들의 삶과 작품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제국으로 향한 여성 유학생들
2. 미술가로서의 삶과 여성운동가로서의 삶
3.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행복으로 압니다”
참고문헌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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