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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하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8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1 - 38 (38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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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전을 파악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신라의 백제통합론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의 삼국통일론이다. 본고는, 신라가 국제전의 결과로 차지한 영토는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임진강 이남이라는 전자의 관점에서 7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전쟁을 검토한 것이다.
첫째, 국제전은 나 · 당 연합의 결성에서 비롯되었다. 신라는 642년 이후 백제의 파상적 공격으로 말미암아 위기를 맞고 있었다. 당은 645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고구려에 대한 원정 실패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김춘추와 당 태종은 648년에 신라의 백제 통합과 당의 고구려 점령을 서로 돕는다는 약속을 맺었다.
둘째, 신라와 당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신라를 도와 백제 원정에 임하는 당의 입장은 달랐다. 당은 660년 백제의 멸망 이후 그곳을 간접 지배하는 한편, 고구려를 점령하기 위한 후방 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당은 백제 원정에 앞서 왜의 사신이 돌아가는 길에 백제와 내통할 것을 염려하여 귀국을 보류시키기도 했다. 당은 고구려의 강력한 방어 역량 때문에 전략을 세 차례나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백제 멸망 이전의 요동공략책과 그 이후의 평양직공책은 모두 실패했다. 문무왕은 백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당 고종에게 고구려 원정을 요청했다. 당은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내부를 이간시킨 끝에 668년에 멸망시킬 수 있었다.
셋째, 나 · 당 전쟁으로 신라와 당의 관계는 반전되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백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신라와 당은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신라는 당을 상대로 싸워 675년 임진강 이남의 백제 영토를 모두 차지하는 통합을 이루었다. 당은 토번과의 전쟁으로 인해 676년에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철수함으로써 장기간의 국제전은 종막을 고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관점; 신라의 삼국통일인가?
Ⅱ. 발단; 나 · 당 연합의 결성
Ⅲ. 전개;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Ⅳ. 반전; 나 · 당 전쟁과 토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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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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