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호태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57호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6 - 32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중장기병술(重裝騎兵術)은 북중국에서 5호16국시대가 개막되기 이전 이미 중국에서 도입, 활용되던 무장기법이자 전투방식이다. 고구려와 모용선비 전연(前燕)은 북중국이 혼란기에 접어들자 적극적으로 기존의 중장기병을 받아들여 전장에 투입하였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고구려와 전연의 중장기병 관련 유물이 세부 기법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도 두 나라가 큰 시차 없이 독자적으로 중장기병술을 도입,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모용선비의 삼연(三燕, 전연·후연·북연)은 100여 년에 걸친 접촉을 통해 인력과 기술, 물자를 교환했다. 특히 전쟁에 수반되는 인적 약탈은 상호문물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436년 북연의 멸망과 함께 이루어진 용성(龍城) 사족(士族)과 민호(民戶)의 고구려 유입은 5호16국시대 후기 북중국의 지식과 기술이 고구려에 집중적으로 전해지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고구려와 모용선비 삼연의 벽화고분은 중국 한, 위·진 벽화고분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출현하였다. 고구려는 4세기 중엽부터 생활풍속계 고분벽화를 다수 제작하고 5세기 중엽에는 장식무늬계 고분벽화라는 독자 유형을 출현시킨다. 반면 모용선비 삼연 사회에서 고분벽화는 일시적인 문화 현상에 그친다.
북연의 권력자 풍소불(馮素弗)의 무덤 형식과 출토 유물은 5세기 전반 모용 선비 문화의 성격을 잘 알려준다. 풍소불 무덤은 묘제에서는 선비적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껴묻거리 구성에서는 한문화의 영향이 뚜렷하다. 풍소불 무덤은 북연(北燕) 시기에도 모용선비가 호족과 한족 연합국가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를 정립시키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음을 알게 한다.
주류 묘제가 없던 삼연과 달리 고구려는 5세기에 이르러 한(漢) 문화에서 기원한 석실분을 고구려식 묘제로 소화하여 재정립시킨다. 외래의 불교신앙을 고구려 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 잡게 했음도 연꽃장식무늬 주제 고분벽화를 통해 확인된다. 5세기 고구려에서 성립하여 내외에 각인시킨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天下觀)도 동북아시아 패권국가로서의 정치적·문화적 자신감에서 비롯된 현상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구려 · 삼연의 고분 부장유물과 벽화
Ⅲ. 4~5세기 고구려와 삼연의 교류 양상
Ⅳ. 고분문화로 본 고구려와 삼연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8-910-001329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