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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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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동북아학회 한국동북아논총 한국동북아논총 제65호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67 - 89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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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이주자, 외국인 유학생의 증가로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지만 한국 화교는 약 100년 전부터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인천과 부산을 중심으로 마산, 대구, 전주, 군산 등 지역별 화교 사회에 대한 현황과 특징을 규명한 소수의 연구들이 있지만 광주지역 화교에 대한 연구는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광주지역 화교를 대상으로 한국 화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규명하고자 한다. 광주지역 화교를 중심으로 고찰한 한국 화교의 정체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화교들은 자신들의 중국적인 문화적 동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과 학교에서 중국어 사용을 강조하였다. 또한 화교와의 폐쇄적인 혼인 관습을 유지함으로 그들의 혈통을 지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화교 학교를 통해 그들의 연대 의식을 확인하였고 비공식적 조직인 후이(會)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였다. 둘째, 한국에서 화교들은 한민족 의식이 강했던 한국인으로부터 개인적인 차별과 한국 정부의 법적, 경제적 차별 정책으로 인해 많은 제약과 제재를 받았다. 법적 국가인 타이완에서도 그들은 완전한 타이완 국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조상의 나라인 중국에서도 그들은 이방인이었다. 해외에 유입된 신화교(新華僑)들조차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한국 화교의 정체성은 한국 화교들이 한국에서 유지해온 중국어 사용, 화교들 간의 혼인, 화교 학교와 후이 조직 등 고유한 중국적인 문화적 토대인 그들의 종족 동일시(ethnic identification)와 한국인, 타이완인, 중국 본토인 나아가 신화교 등 외부자에 의해 주어지는 종족적 지정(ethnic designation) 간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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