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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은경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6號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133 - 163 (31page)
DOI
10.14769/jkaahe.2018.08.3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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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새로이 발견된 남조 관음보살상들을 연구대상으로 포함함으로 인해 기존의 학설과 논쟁점에 대한 再考의 필요성이 제기됨으로 인해 작성하게 되었다. 필자는 우선 명문과 도상을 기준으로 하여 남조 관음보살상을 분류한 결과 시무외인 관음보살상, 양류관음보살상, 봉보주관음보살상으로 구분되었다. 자료의 제한성으로 인해, 연구대상면에서 앞의 두 관음상은 본존상이며, 봉보주상은 협시상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두었다.
시무외 · 여원인 관음보살상은 여원인의 다양한 손모양으로 인해 그 명칭을 시무외인 관음보살상으로 수정하였다. 이 보살상은 남경일대의 소금동상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전체적인 양식은 서로 유사하였다. 남경 소금동상의 특징과 북조, 우리나라 삼국시대 소금동상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금번의 고찰을 통해 우리나라 삼국시대 관음상의 도상은 양류, 봉보주 이외에 시무외인이 존재한다는 것과 양식적으로 시무외인은 양류, 봉보주보다 좀더 시기가 이른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시무외인 관음보살상의 도상적 근거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과 『청관세음소복독해다라니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기존의 학설과는 달리 시무외인 관음보살상의 소의경전은 존재하며, 이 수인은 관음상의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남조 양류관음보살상은 버드나무가지 · 정병 이외에 버드나무가지 · 작은 항아리를 지물로 잡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시간적으로는 버드나무 · 작은 항아리의 지물이 버드나무가지 · 정병보다 이르다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 정병 등의 지물은 소의경전인 『청관음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경전에서 언급한 깨끗한 물을 조각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담은 작은 항아리 혹은 정병으로 변화시켜 나타낸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 가지 주목할 내용은 남조 양류관음보살상에는 화불, 영락, 정토도, 관세음구제도 등의 도상과 내용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법화경』,『관무량수경』에서 그 관련성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남조 양류관음보살상은 당시 남조사회에서 유행한 관음과 관련된 경전들 속에서 그 상징물을 뽑은 후 이들을 복합적으로 모아 하나의 관음상에 표현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기존 학계에서는 남조 관음보살상과 『법화경』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의 고찰을 통해 『법화경』이외에 청관음경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 경전은 백제에도 전래되었으며 일본에 현존하는 불상을 통해 봉보주보살상과의 관련성을 지적하였다. 지금까지 보살상이 두 손을 위아래로 하여 보주를 감싼 도상은 그 기원처, 지물의 종류, 존상명 등 뜨거운 논쟁점이 되어 왔다.
비록 남조 관음보살상의 신자료는 첨가되었지만 봉보주의 원류는 여전히 남조로 비정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남조 봉보주보살상은 모두 협시보살상이라는 자료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 존명을 관음보살상으로 일률적으로 보기는 힘든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백제 봉보주보살상의 존상명에 대해서는 차후 신자료의 보충을 통해,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하였다.
남조 보살상은 다양한 형태의 둥근 지물을 두 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백제에서는 크고 둥근 보주로 변화하였거나 혹은 취사선택되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와 취사선택의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마한, 백제인들이 큰 구슬을 금은보다 더욱 귀중하고 보배롭게 생각한 전통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두 번째는 6세기 전반부터 남북조에서 성행한 전륜성왕신앙의 영향아래에서 백제인들은 보주를 불교적인 상징물로 간주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시무외인 관음보살상
Ⅲ. 양류관음보살상
Ⅳ. 봉(지)보주보살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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