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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인호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2호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7 - 38 (32page)
DOI
10.21490/jskh.2018.08.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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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구려 前期 최고관직의 변화에 따른 執權勢力의 추이를 검토한 논문이다. 大輔 협보는 주몽과 함께 남하한 3友 중 한 명이므로 대보는 친왕적 인물이 임명된 자리이다. 그리고 대보가 운영되던 시기에 중앙 정계에서 활동한 사람은 행적과 성씨로 보아 부여 출신 인물들로 여겨진다. 따라서 동명왕부터 유리왕 대에는 부여 출신 인물들이 집권세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좌우보가 설치될 무렵 고구려는 시조묘 건립과 대 부여 전쟁으로 인해 왕의 이념적 · 정치적 권한이 상승되었고 주변의 재지세력을 통합하면서 나부가 형성되었다. 좌우보는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는데, 좌우보를 역임한 인물을 살펴본 결과 계루부 출신과 더불어 나부 출신 인물들(제가)도 임명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좌우보 시행기에는 왕족과 부여출신 인사들, 그리고 제가가 집권세력을 형성했다. 국상이 시행되던 무렵에는 나부가 族을 단위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지역에 남아서 나부명을 유지한 경우도 있지만 몰락하여 평민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거나 중앙으로 이주하는 등 제가가 일반적인 지배층으로 전환되었다. 이와 더불어 관직과 관서가 분화되어 초보적이나마 관료제가 시행되었다. 국상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설치 · 운영되었는데, 친왕적 성향의 인물이 임명된 관료를 대표하는 자리였다. 그러므로 국상제 운영기의 집권세력은 관료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大輔와 부여계 정치세력
3. 左輔 · 右輔의 운영과 諸加 세력
4. 國相制의 운용과 제가의 관료화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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