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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욱 (고려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3호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203 - 236 (34page)
DOI
10.21490/jskh.2018.11.7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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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삼일운동 당시 쓰인 일기 자료로 한국인 일기 14종 16건, 외국인 일기 4건 총 20건을 정리 비교하면서 그 특성을 파악해보았다. 한국인 일기는 16건 중 한지에 한문으로 쓴 것이 10건으로 전통적인 양식의 것이 많았다. 작성 주체는 전부 남성이고 16인의 1919년 당시 평균 연령은 48세였으며 대부분 유생이나 종교인이었다. 삼일운동의 참여층에 비해 나이가 많고 지식인층이 다수였다. 이러한 일기를 통해 삼일운동을 고찰할 때 그 자료가 가지는 편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기 자료를 통해 삼일운동 관련 정보의 유통을 살펴보면, 전 지역에 공통으로 사람을 통한 정보의 유통이 많았다. 방문객이 주요한 정보 전달자였다. 학생 네트워크로서 하숙집, 지역의 시장도 주요한 정보 유통 통로로서 기능했다. 일기 작자들은 신문이나 전단을 통해서도 시위 정보를 얻었는데, 그 의존도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조선총독부의 통제하에 발행되는 신문 보도이지만 통치 의도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신문은 시위가 진정되고 있음을 강조했지만, 경성의 김윤식은 3, 4월 일기에 계속 만세시위가 “그치지 않는다”고 적었다. 유언비어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시위 보도 금지를 해제했지만, 전남 구례의 유형업은 ≪매일신보≫의 보도를 통해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불안했다. 이런 가운데 독립의 희망이 담긴 ‘독립문’ 괴담이 전국에 유포되었고 일본의 탄압을 비판하는 ‘애국 소녀’ 이야기가 도시에서 발생했다. 삼일운동에 대한 일기작자의 반응을 살펴보면 우선 뮈텔(Gustave Charles Marie Mutel) 주교는 만세시위를 ‘망동’으로 보았지만, 선교사 노블 부인(Noble Mattie Wilcox)은 환호하고 공감했다. 김윤식과 윤치호는 삼일운동의 파도에 흔들리면서 교차하며 다른 길을 갔다. 김윤식은 삼일운동 당시 자신에 대한 모함과 민중이 보인 전국적인 만세시위를 계기로 ‘독립청원서’를 써서 공표했다. 반면에 윤치호는 만세시위를 통해 ‘민족’을 새롭게 발견하고 긍정하기도 하나 결국 식민지배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종교의 논리로 합리화했다. 울산의 심원권과 김해의 김영순도 대조적이다. 심원권의 1919년 일기에는 삼일운동은 물론 고종의 사망과 장례식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김영순은 1919년 당시와 1920년대 초에 거주 지역 만세시위에 대해 파자(破字)로 적었고 해방된 뒤에 정자로 기록했다. 자신의 일기에도 파자를 써야 하는 식민지라는 엄혹한 상황, 그런데도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삼일운동 시기 일기 자료와 그 특성
3. 일기로 본 삼일운동 관련 정보의 유통
4. 삼일운동에 대한 일기 작자의 반응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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