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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은용 (한일문화연구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집 제3호(통권 제33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5 - 3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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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학은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 본고는 이러한 과제를 설정하고 그 문화적 기반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제기하는 담론이다. 전국토의 7할을 차지하는 산악지역에서 평야지대로 이어지는 지점에 익산은 위치한다. 따라서 평야지대의 도작(稻作) 소출은 고래로 이 지역을 경제 · 정치 · 군사 · 문화의 요충지로 발전시켰다. 일찍이 기자조선 준왕(準王)의 남래 정착과 마한 건마국(健馬國), 백제 말기 무왕(武王)의 천도, 그리고 고구려 멸망후 유민들에 의한 안승(安勝)의 보덕국(報德國)이 모두 이 지역에 건설되었다.
호남과 호서를 가르는 황등제호(黃登堤湖)의 건설은 물론, 익주(益州)라는 이름을 얻은 고려시대의 말기(1380)에 왜구를 물리친 진포대첩(鎭浦大捷)이 이 지역 웅포의 조운창(漕運倉)인 덕성청(德城倉)의 미곡(米穀)탈취와 관련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농업기반의 익산은 일제시대인 1912년 호남선, 1914년 전라선 철도건설과 관련해서 도시화가 추진되었는데, 1925-1937년 만경강 직강(直江)공사가 이루어지고 1932-1935년 경천저수지를 완공하면서 황등제호를 메워버렸다.
익산시는 1947년 익산군․이리부(부, 시) 체제에서 1995년 도농통합의 익산시가 이루어졌으나,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존재하는 도시이면서도 물이 없는 도시가 되었다. 1974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미륵사지 발굴을 시작으로 역사 복원이 추진되어 이 지역이 고대문화 지역임이 밝혀졌다. 그 결과 2010년 경주공부 · 부여와 함께 고도(古都)로 지정되었고, 2015년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위치한 익산은 물 없는 도시가 되었고, 진포대첩과 같은 역사유적은 고증작업이나 현창사업이 이루어지는 대신, 이웃지역에서 탑 · 비를 세우는 등 왜곡을 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익산은 식품클러스터와 같은 농업기반 도시로서의 면모를 확립하면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익산학의 전개에 선결과제로 제기된다.

목차

국문초록
I. 서언
II. 농업기반의 상징, 황등호수와 덕성창
III. 도시화과정과 환경의 변화
IV. 문화정체성과 익산학의 과제
V.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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