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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영섭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86집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9 - 38 (30page)
DOI
10.18587/bh.2019.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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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대승기신론』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살핀 글이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대승기신론』 연구는 원효의 주석서들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원효(元曉, 617-686)의 8종 주석 중에서 현존하는 『대승기신론별기』와 『대승기신론이장의』 및 『대승기신론소』 등은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에 큰 영향을 미쳤고, 법장(法藏, 643-712)의 주석을 요약 해설한 종밀(宗密, 780-841)의 『대승기신론소』 편찬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또 원효의 주석은 신라의 태현(太賢)과 견등(見登) 및 지경(智憬)과 월충(月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는 『대승기신론』 주석서에서 일심(一心)을 적멸(寂滅)과 여래장(如來藏)의 두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뒤에 그는 궁극적으로 진여(眞如)와 생멸(生滅) 이외에 ‘본법(本法)으로서 일심’을 상위개념으로 시설하여 ‘일심-진여-생멸’의 삼제설(三諦說)을 견지하고 있다. 원효가 일심을 적멸으로서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으로 구분한 것은 『기신론』의 본의를 충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능가경󰡕의 교설을 원용하여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일심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보는 지점에는 그의 인간이해와 세계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선종의 유포와 교학의 쇠퇴로 『대승기신론』 주석서가 널리 유통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석서 간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원효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와 이를 요약 해석한 종밀의 『기신론소』가 간행 유통되어 간접적으로나마 원효의 기신론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백암 성총(栢庵 性聰, 1631-1700)이 법장의 주석서(述䟽)와 종밀의 주석서(錄䟽注論) 및 장수 자선(長水 子璿, 965-1038)의 주석서(錄記)를 아우르면서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大乘起信論疏筆削記會編)을 펴내어 유통시켰다. 성총의 회편 간행은 이후 이루어진 강학의 재정비 과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18세기 이후의 강원 이력과정의 사교과에서는 『법화경』 대신 『대승기신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처럼 『대승기신론』에 대한 관심은 신라시대에 견줄 수는 없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주석과 판각 및 간행과 유통으로 이어졌으며 가냘프기는 하지만 대한시대(1987-남북통일)에 들어서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대승기신론』의 지위와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철학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부합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한글요약
Ⅰ. 서언
Ⅱ. 신라시대 기신학 연구의 지형과 내용
Ⅲ. 원효의 기신학 주석서와 이후의 영향
Ⅳ. 고려시대 기신학 연구 지형과 내용
Ⅴ. 조선시대 기신학 주석서의 판각과 유통
Ⅵ. 결어
참고문헌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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