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경희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연구 아시아문화연구 제49집
발행연도
2019.4
수록면
95 - 124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전후의 ‘근대적 가치’와 ‘민주주의’가 어그러진 기점으로서 1960년대 일본의 ‘근대화’론을 재조명하고 그 냉전 지형(知形)을 고찰한 것이다.
일본에서 ‘근대화’론이 본령을 이룬 것은 1960년대이다. 그 실질적 기점인 하코네회의(1960)에서는 ‘근대화’의 조건을 놓고 서양인 학자와 일본인 학자의 대립이 불거졌다. 일본의 지식인은 ‘근대의 일탈’(군국주의, 침략)을 바로잡아야 했고 ‘민주화’를 ‘전후 근대’의 최대 과제로 삼았다. 반면, 미국학자의 새로운 ‘근대화’론 속에 ‘민주주의’의 지정석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의 경험으로 보아, 근대화 과정은 파시즘과도 양립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실이 ‘근대화’론은 1960년 5월 안보조약 개정 강제체결 이후의 민주화 데모=‘래디컬 데모크라시’의 고삐를 늦추려는 냉전용 ‘지적 버섯구름’이었다.
그 선봉에 섰던 주일대사 라이샤워는 ‘근대화’론 붐이 한창이던 1964년 3월에 누마즈 출신의 19세 소년의 칼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 신문들은 일제히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라이샤워가 그 직전의 한 대담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1963.11.)을 테러리즘(정치, 빈민주)이 아닌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규정했던 것과 흡사했다. 게다가 라이샤워 피습사건은 일미관계의 돈독함을 과시하는 호재로 역전되고, 이듬해 일본과 한일 양국의 민의를 뒤로 한국정부와 국교 정상화를 강행했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전후 동아시아 최인근국과의 자주적인 관계 재구축의 기점에서도 1960년의 좌절을 반복한 것이다. 게다가 1965년의 ‘민주주의’는 1960년 때만큼 뜨겁게는 그해 여름을 달구지 못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960년대 일본 ‘근대화’론의 전야
Ⅲ. 잃어버린 ‘민주’의 행방
Ⅳ. ‘착한 민주주의’의 탄생
Ⅴ. 맺음말 : ‘동아시아(민)주’는 가능한가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910-000725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