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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준혁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9輯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254 - 287 (34page)
DOI
10.31335/HPTS.2019.08.69.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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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고려 말부터 계속된 왜구의 침입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對日關係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조선은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거나 對馬島를 정벌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그 중에서도 對日政策의 정비를 통해 왜구들을 왜인으로 전환시키고자 한것은 태종시기부터였다. 도서·문인제도를 시행하여 왜구들을 통교왜인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했으며, 이는 세종시기로 이어지게 된다.
세종은 태종의 정책들을 계승하여 對日政策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통교왜인은 세종시기에 와서 그 숫자가 더욱 증가하였다. 조선의 경제적 부담은 계속 커져갔고, 세종은 우선적으로 통교왜인들에게 제공되는 과도한 혜택들을 개선해 나갔다.
하지만 조선 경제 부담의 근본적인 원인은 도항해오는 왜인들의 숫자가 많은 것에 있었다. 세종은 신중하게 왜인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조해오는 九州 및 對馬島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이로 인해 처음으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1428년(세종 10) 1차 통신사의 파견 이후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세종은 본격적으로 통교왜인들의 통제에 나섰다. 북방문제로 발생한 두 차례의 파저강정벌 이후에도 세종은 새로운 정책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왜인들을 통제해 나갔다.
하지만 九州는 계속해서 內戰상태에 있었고, 세종은 이러한 상황에서 1439년(세종 21) 2차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해 조선과 對馬島는 몇 차례의 조약이 성사되었고, 1440년(세종 22)인 경신년을 기점으로 對馬島와 체결한 조약들이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차 통신사가 복귀한 이후에는 孤草島에서 왜인들의 어업활동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다. 이 시기는 조선 북방의 야인들의 명의 황제의 허락으로 다시 세력을 합치게 된 상황이었다. 두 차례 정벌을 통해 안정시킨 북방변경이 또 다시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세종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북방정책에 집중하기 위해 對日關係를 확실하게 안정시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對馬島主의 위상을 강화시켜 왜인들을 통제하고자 했는데, 島主중심의 도서·문인체제 및 왜인들의 孤草島 어업활동은 이러한 흐름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조선은 對馬島를 통해 우선적으로 왜인들을 통제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북방정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조선 북방정책의 흐름은 1443년(세종 25)을 전후로 완성되는 四郡六鎭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계속된 對日政策의 흐름 역시 1443년의 癸亥約條 체결로 이어지게 되며, 조선은 남북의 적절한 대외정책을 통해 의미있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1차 조선통신사와 對日政策
Ⅲ. 2차 조선통신사와 對日政策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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