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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18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25 - 34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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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명산 유람은 조국산천을 사랑하는 일이나 문화예술의 실현과정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 이 시기의 그 많은 명산유람은 수양방법의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당대인들은 수양의 방편으로 방, 암자, 굴에서 고심참담하게 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산천을 유람하면서 눈에 보이는 사물에서 자신의 길-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산수 유람을 유기(遊記)라는 문학장르로 남기고 있다. 이들 유기(遊記)에는 옛사람이 명산을 유람한 이유가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산은 영(靈)의 응결처(凝結處)이다. 그러므로 입산이란 행위는 영의 응결처에 함께 함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산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신적 자유의 실현이다. 산은 현실세계[속세]의 연장이 아니다. 심하게 말해 입산이란 현실세계의 부정이다. 그래서 입산한 사람은 속세의 허상을 버려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희로애락(喜怒哀樂) 등의 정(情)을 응시할 수가 있게 되고, 이에 자신의 참다운 내면을 살펴서 정신적 자유를 얻고자 한다.본고는 이러한 입장에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이 실제로 명산을 다녀와서 남긴 기록을 살펴보았다. 특히 그가 남긴 묘향산(妙香山)향풍산(香楓山)에 대한 기록은 당대인의 명산유람을 올바로 보여주고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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